서울에만 20만가구 대체 주거지 필요…'질서 있는 이주' 없으면 난민 신세
"공공주택 공급 늘리고 민간주택 고밀개발 병행해야"
반지하→임대주택 좁은 사다리…작년 입주 비율 14.8%
서울시가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 건축을 불허하고 기존 주택도 향후 20년 내 차례로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대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정교한 주거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적 여건상 반지하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 취약계층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들이 '질서 있는 이주'를 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이주 계획과 지원 대책, 대체 주거지 공급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1일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7천320가구이며, 이 가운데 서울에 20만849가구(61.4%)가 몰려있다.

자치구 중에는 관악구가 2만여가구(12%)로 가장 많다.

◇ 결국 주거비 문제…주거 사다리 없으면 '주거 난민' 발생
반지하 주택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주거비다.

국토연구원이 작년 4월 발간한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 저층주거지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소득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소득 351만원의 절반에 그친다.

또한 저소득층, 비정규직 비율은 각각 74.7%, 52.9%에 이른다.

특히 노년가구주의 비율(19.2%)이 다른 주거 형태보다 2배 가까이 높고 자녀양육가구 비율(22.1%)도 높은 편이다.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자녀양육가구는 상대적으로 넓은 주거면적이 필요하므로 원룸형 비주택에 거주하기 힘들다"며 "사실상 지하주거가 저소득 자녀양육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 형태"라고 설명했다.

반지하를 선택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부는 열악해도, 도심 한복판이기에 교통 등 다른 입지 조건이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반지하만큼이나 싼값으로 지낼 수 있으면서 입지 조건도 준수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세입자가 반지하 주택에서 자발적으로 나올 유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거 사다리를 제대로 놓지 않고 반지하 퇴출이 진행된다면 '주거난민' 발생이 불가피하다.

반지하→임대주택 좁은 사다리…작년 입주 비율 14.8%
◇ 공공임대 주택 부족…주거 사다리 올라탄 비율 14.8%
대체 주거공간으로 가장 먼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공공임대주택이다.

빈곤가구 비율이 높아도 임대주택 공급량이 많은 지역은 반지하 가구 수가 적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반지하 가구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 저소득 다자녀가구 공공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부여 ▲ 입지를 고려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을 제시했다.

서울시도 고시원, 쪽방, 지하·반지하 등에 사는 시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사업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약 24만호 수준이고,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천669가구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14.8%)에 그친다.

시가 반지하 가구 지원에만 매몰돼다 보면 다른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결국 전체적인 공공임대주택 물량 자체가 늘어야 균형을 유지하면서 대체 주거지 확보가 가능한 셈이다.

이외에도 시는 가구 수에 따라 월 8만∼10만5천원을 지원하는 주거바우처를 활용한다는 구상이지만, 반지하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의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고려하면 이를 퇴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가는 것이 맞다"라면서도 "공공임대주택으로 반지하 거주 가구를 모두 이주시키기에는 공급 물량이 절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공공은 공공대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민간은 민간대로 용적률을 높이고 층수 제한을 완화한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 안전하면서도 가격이 싼 주택을 최대한 많이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