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차라리 제조업 도급을 금지하라
최근 대법원은 제철소에서 크레인 운전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업체의 파견근로자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다221638).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결(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이 제시한 파견과 도급의 판단 기준을 다시 한번 제시하면서, 원청업체의 제품 생산과정과 조업체계가 작업표준서와 전산관리시스템에 의해 계획되고 관리된다는 점을 상당한 지휘·명령의 표지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였던 크레인 운전이 공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이며 원청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와 구별되기 어렵다는 점을 사업장 편입의 표지로 평가하여,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파견근로자로 평가하였다.

최근 제조업체의 생산은 전사적인 생산관리시스템(소위 MES)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사내협력업체도 그 도급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러한 시스템에 접속하여 업무를 진행하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산과정에서 생산을 위한 정보의 전달이 정보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원청업체가 자동화된 생산시스템을 마련하고 사내협력업체가 이에 접속하여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작업대상 및 작업순서 등에 관한 지휘·명령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판결의 태도는 MES시스템의 성질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과도한 해석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MES는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완료된 업무를 검수하며 작업정보를 공유하고,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반 정보가 기록·처리하는 것을 그 주된 기능으로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현대 제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채택되어 있는 시스템으로서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지휘·명령으로 평가하게 되면, MES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노무도급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모두 불법파견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대형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대부분 MES를 통해 생산을 관리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법원이 판결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에 노무도급 사용은 사실상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법리를 조금 확대하게 되면 원청업체 근로자가 전혀 없이 원청업체는 시스템을 포함한 물적 시설만을 임대하여 주고 사내협력업체가 그러한 물적시설만을 임대하여 자신이 채용한 근로자들로 하여금 생산을 하게 하는 소위 생산전문도급의 경우에도 원청업체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제조업체가 생산을 함에 있어 효율적인 자원의 분배를 통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심각한 위해 요인이며, 인력의 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경영적인 판단을 법적인 잣대로 심하게 재단하는 것으로, 사적자치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이번 판결을 모든 MES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 MES시스템은 여러 가지가 있고,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회사도 있다.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과 성질이 매우 다양하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접속하여 볼 수 있는 정보의 내용도 시스템마다 상이하다.

한편 사업장 편입의 판단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공동성이 있어야 사업장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다. 대법원의 판결의 취지는 제조업체의 연속흐름공정에서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원청업체 근로자들과 공동작업을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즉, 원청업체 근로자들은 핵심공정,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지원과 같은 부수적 공정으로 구별되어 있는 경우라도, 외관상 지원업무라고 그 업무가 기능적 측면에서 제품생산이라는 단일한 목적을 위해 연동되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공동작업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근로자들이 철강의 생산이라는 목적을 위해 진행되는 연속흐름공정의 일부분을 구성하면서, 각 개별 공정들과 연동돼 있고, 이러한 크레인 업무가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는 물류가 아니라 크레인 업무 자체가 연속흐름으로 이뤄지는 철강 제조 공정의 일부라는 점에 근거하여 공동작업으로 보고, 이를 사업장 편입의 표지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작업의 문언에 충실하게 그 의미를 해석하면, 공동작업이란 원청업체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하나의 작업팀을 형성하여 같은 업무에 투입되어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공동작업에서는 원청업체인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이 그 작업팀 구성원 모두에게 행사될 개연성이 높고, 공동작업의 대상이 되는 업무는 도급계약에서 계약당사자가 합의한 업무를 넘어 원청업체가 지시하는 업무도 포함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공동작업의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으로 평가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반면 협력업체가 수행하는 도급 대상업무가 사전에 구체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완성 및 성과의 측정이 가능하도록 다른 계약당사자가 수행하는 업무내용과 분리될 수 있는 경우에는 이렇게 분리된 업무를 도급계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업무가 분리되는 경우에는 공동작업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전체적인 연속흐름공정에서 하나의 독립된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도 이를 공동작업으로 파악하여 불법파견의 표지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도급업무의 내용이 전체 생산과정에서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를 불법파견의 요소라고 하는 것은 연속흐름공정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전체에 대해 노무도급을 금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태도에 의하면 연속흐름 공정에서의 도급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제조업이 연속흐름공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은 원청업체와 협력업체의 업무가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한 듯 하나, 전체 생산과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도급업무가 중요한 핵심업무와 연동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지, 본질적인 부분인지 여부 등도 판단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이를 불법파견의 요소로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무엇보다도 민법상 도급의 법리에 의하더라도 전체 과정에서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 도급임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된다는 점은 당혹스럽다. 대표적인 도급업무인 건설도급을 보더라도 건물을 올리는 데 중요한 철골작업 등을 도급 준다는 이유로 이를 파견으로 보지는 않는다. 도급법리 어디에도 그 도급업무가 여러 도급 내지 원청업체의 노무투입을 통한 최종 작업물 산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도급업무 해당 여부에 대한 기준으로 삼는 바가 없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