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한명의 교육부장관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만5세 초등입학’을 덜컥 발표해 전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뒤 지난 8일 임명 34일만에 사퇴했다.

박 부총리뿐이 아니다. 교육부장관은 평균 재임기간이 1년을 겨우 넘길 정도로 대다수 ‘단명’했다.

○이기준 6일·김병준 13일...교육부장관 단명 반복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초대부터 박순애 부총리까지 교육부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4.9개월에 불과하다.

역대 최단기간 재임한 교육부장관은 2005년 6일만에 사퇴한 이기준 장관이다. 서울대 총장 시절 판공비를 과다 지출해 도덕성 시비가 걸린데 이어 장남의 이중국적과 병역도 문제가 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의 송자 장관은 취임 전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편법으로 주식을 취득했다는 의혹으로 24일만에 사퇴했다.

2006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김병준 장관이 논문 표절 의혹으로 13일만에 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1년 이상 재임한 장관들도 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내려온 인물은 많지 않고, 대체로 논란 끝에 불명예스럽게 사임했다.

교육부장관이 유독 단명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만큼 교육부는 국민 정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 박순애도 학부모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만5세 초등입학’이나 ‘외고폐지’ 정책을 갑작스레 꺼내들었다가 극심한 반발에 사퇴했다.

황우여 장관은 국정 교과서, 김상곤 장관은 정시 확대 문제로 국민적 반대를 겪다 경질됐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아바타'?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의 아바타’처럼 쓰이고 버려진다는 분석도 있다. 역대 교육부장관을 연구한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2018년 논문을 통해 “한국의 대통령들은 교육부장관을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관이) 직을 유지하려면 청와대 조정에 응해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폐기 경고가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민들은 아바타만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교체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그를 희생 제물로 활용하며 위기를 넘기곤 했다”고 덧붙였다.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에 여권에서 경질을 요구했다.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에 여권에서 경질을 요구했다.
거물급 정치인도 ‘아바타 역할’을 거부하면 경질됐다. 박근혜 정부의 황우여 장관은 5선 국회의원에 여당 대표까지 역임한 거물급 정치인이었지만,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여권과 갈등을 빚었다.

대통령과 여당이 미는 국정화를 추진하는데 황 장관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직접 경질을 언급할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의 김상곤 장관은 정시를 확대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수용했으나, 이에 반발한 교육단체들의 퇴진 요구를 받고 결국 사퇴했다.
2018년 진보와 보수 교육단체들이 모두 대입 개편안에 반대하며 당시 김상곤 교육부장관 사퇴 운동을 벌였다.
2018년 진보와 보수 교육단체들이 모두 대입 개편안에 반대하며 당시 김상곤 교육부장관 사퇴 운동을 벌였다.
다른 부처 장관보다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도 높다. 학생과 교사들의 모범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박순애 부총리는 음주운전, 논문 중복 게재, 자녀 입시 컨설팅 등으로 후보자 시절부터 끊임없는 비판이 제기됐다. 후보자로 지목됐던 김인철 전 한국외대 총장은 술집에서 논문을 심사했다는 ‘방석집 논란’에 사퇴하기도 했다.

○교수 출신 66%...정치력 부족

다른 부처 장관보다 유독 교수 출신이 많아 정치력, 행정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역대 교육부 장관중 66%를 넘는 인원이 교수 출신이다. 이중에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다른 분야 교수인 경우가 대다수다. 박순애 부총리도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교육과는 거리가 먼 행정 전문가였다. 이명박 정부의 김도연 장관은 재료공학, 박근혜 정부의 이준식 장관은 기계공학부 교수였다.

이렇게 잦은 교육부 장관 교체는 ‘백년지대계’로 교육정책을 세우는데 장애물이 된다. 박남기 교수는 논문을 통해 “잦은 교체에 따른 교육부장관 임기의 불안정성은 장관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향후 중장기 교육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교육부장관 권한이 축소되리란 시각도 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