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도입 논란을 빚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4일 시행된다. 130개 공공기관(공기업 36개, 준정부기관 94개)은 사내이사 공석이 생기면 그 가운데 한 자리를 노동이사로 채워야 한다. 노동계는 벌써부터 노동이사의 권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노조의 권한이 센 공공기관에 노동이사까지 가세하면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3일 국회에서 정의당과 토론회를 열어 “노동이사의 실질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선 노동이사의 권한을 다른 비상임이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사장 등을 뽑는 임원추천위원회에 노동이사 참여, 이사회 안건부의권과 문서열람권 허용을 요구했다. 노동이사의 권한을 상임이사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준의 노동이사는 ‘사측 거수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지난달 14일 기획재정부에 의견서를 보내 노동이사의 ‘조합원 자격 박탈’ 지침 철회와 노동이사의 유급제 및 근무 기간 인사평가 점수 보장, 업무 공간 확보, 교육 프로그램 제공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이사제 시행에 맞춰 노동계의 요구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기재부는 노동이사의 권한 확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경영 지침’을 통해 노조원이 노동이사로 선임되면 노조원 자격을 박탈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이사는 경영에 참여하는 만큼 노조의 이익만을 대표해선 안 되며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법률·시행령에서 정하지 않거나 위임하지 않은 내용을 ‘지침(가이드라인)’ 형식으로 규율하는 것은 재량권 일탈,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본격 시행되면 노동이사의 권한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업으로 확대되고 이 과정에서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