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로 외부통제 강화 필요성 또 제기…복지부는 부정적 입장
[이슈 In] 건보 지배구조 논란 재발…"국회 통제 필요" vs "자치 훼손"
건강보험 재정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감사원이 건보재정 실태를 샅샅이 들여다보면서 특히 보건의료 당국이 국회 등 외부의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재정을 자체적으로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문제 삼으면서 건보재정 기금화 등 개선 대안을 마련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건보재정을 총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는 더욱더 엄격하게 건보재정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도 외부통제 강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건강보험 기금화는 새로운 논쟁거리가 아니다.

이미 2003년부터 국회에서 건보재정이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어 예산 심의 권한을 제약한다는 취지로 거듭 지적하면서 관련 법안이 제출되는 등 수십 년째 찬반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2월 재정개혁보고서를 통해 2022년까지 건강보험을 기금화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 현행 건보 재정 관리 구조 어떻길래
지난달 28일 감사원이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건강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8개의 사회보험이 있다.

이 중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외한 다른 6개 사회보험은 모두 국가재정에 포함돼 기금으로 운영되며 기금운용계획과 결산에 대해서는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방식으로 통제를 받고 있다.

[이슈 In] 건보 지배구조 논란 재발…"국회 통제 필요" vs "자치 훼손"
그러나 건강보험은 다른 사회 보험성 기금과는 달리 건보공단의 일반회계로 운영되며 정부지원금을 제외하고는 예결산에 대한 국회 심의 등 외부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건보재정의 주요 의사결정은 건강보험사업의 주무 부처인 복지부와 건보 정책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통해 이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복지부는 건강보험법에 따라 건정심을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운영하면서 건보 적용 여부를 정하는 요양급여의 기준과 비용, 보험료율, 의료공급자들의 수입에 직결되는 의료 수가 등 건보재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의사결정 안건들을 건정심의 심의·의결을 거쳐 추진하고 있다.

건정심은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가입자 측을 대표하는 노동계와 경영계 등의 위원 8명, 의약계를 대변하는 위원 8명, 복지부·건보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 공공을 대표하는 위원 8명 등으로 구성되며, 위원들은 복지부가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 감사원 "건보 지속가능성·재정건전성 위해 외부통제 필요"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의료 수요가 큰 65세 이상 노인인구 진료비가 급증하고 있다.

노인 의료비가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7.6%에서 2020년 43.1%로 늘었다.

이에 반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계속 감소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60년 48.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건보재정 지출의 증가와 수입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건보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다 2000년대 이후 역대 정권마다 지속해서 추진해온 건보급여 범위 확대의 영향과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감소한 의료수요의 회복까지 고려하면 건보재정의 환경은 갈수록 악화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재정고갈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며 "건보재정의 지속가능한 운용을 위해서는 기금화 등의 방식을 통해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현재의 건보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게다가 건강보험은 준조세적 성격의 건강보험료와 재정적자 보전 성격의 정부지원금을 주된 재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심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한마디로 국민이 건보료를 조세와 같이 보고 있고, 실제로 건보 재원 자체가 국민이 의무적으로 내는 보험료로 조성되는 만큼, 기금화해서 대의기관인 국회가 건보예산과 결산 등 재정 전체를 심의, 의결하는 등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슈 In] 건보 지배구조 논란 재발…"국회 통제 필요" vs "자치 훼손"
◇ 복지부 "전문적 의사결정 및 건보 당사자 자치 원리 왜곡 위험"
복지부가 건보 재정에 대한 외부 통제에 사실상 반대하는 이유는 몇 가지다.

우선 건보 재정관리에 대해 외부통제를 강화할 경우 먼저 재정 책임을 분산해 수지 균형보다는 지출 위주로 재정을 운영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현재 국회는 정부가 건보에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예상 보험료의 20%)에 대해서만 심의, 의결하는 등 건보 재정관리의 권한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기금화되면 보험료와 수가(의료서비스 제공대가) 인상, 보험적용 질환과 급여 확대 여부 등 건강보험과 관련된 주요 사안이 모두 국회의 심의대상이 되면서 영향력이 커진다.

문제는 각종 이익단체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회에서 건보재정을 통제하게 되면, 가입자와 의료공급자 등 보험 당사자 간 자율적 의사결정 과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해마다 수가 협상과 보험료율 결정 등에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보험료와 수가 조정이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그냥 기우로 그치면 좋겠지만, 이런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특히 국회가 국민의 눈치를 보고 보험료를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건보재정이 오히려 악화할 수도 있다고 기금화 반대 측은 주장한다.

복지부가 그간 줄곧 건강보험은 '당사자(보험자, 가입자, 공급자) 간 자치 원칙'에 따라 외부의 통제 없이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까닭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을 기금화하면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보험재정 운용 주체가 모호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건보 제도 운영의 경직성도 증가해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벌어질 때 국민의료수요에 적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고, 전문적 의사결정을 왜곡할 위험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외부통제 강화에 반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