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잇따르고 반대 집회엔 700명 몰려…학교 혼란·돌봄공백 우려
先발표 後논의에 "졸속행정"…부총리 해명엔 "불난 데 부채질"
총리 "의견 청취하라" 수습 나섰지만 야당선 부총리 사퇴 요구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한 해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교육부가 1일 "확정된 안이 아니다"라면서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지만 '백년지대계'인 교육 정책을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덜컥 발표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입학연령을 1개월씩 12년에 걸쳐 줄이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해명한 데 대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오히려 논란을 더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학연령 하향 논란' 전방위로…정부 해명에도 반발 확산(종합)
◇ 반대 집회에 700명 몰려…학교 혼란·돌봄공백 등 우려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초등 입학연령을 한살 낮추는 학제개편 방안을 전격 발표한 직후부터 교육계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43개 단체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입학연령 하향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당초 신고 인원인 450명을 훌쩍 넘긴 7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만 5세가 초등 입학 웬 말이냐", "교육부는 유아 발달 알고 있나", "지금 당장 조기 입학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대 서명도 진행 중이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2일부터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이나 입장 발표도 잇따랐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초등학교 1학년의 교육과정을 만 5세 아동들에게 적용했을 때 아이들의 인지발달상 적절한지 숙고가 선행돼야 마땅함에도 경제적 논리만을 적용한 탁상 행정의 결과"라며 "유아와 초등 교육의 전문성을 모두 무시하는 교육 무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전날에 이어 재차 논평을 내 "교사 정원은 줄었고,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요원한 상황에서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며 "단설·병설 유치원 확대,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모든 유아가 유치원에 갈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돌봄 공백과 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박 부총리는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력과 공간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입학연령을 낮출 시기로 구상하는 2025년까지 '저녁 8시까지 돌봄'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0년 11월 범정부 온종일 돌봄 수요조사 결과 47만4천여 명이 돌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나 2020년 돌봄교실을 이용한 학생 수는 25만6천명일 정도로 돌봄교실 인프라가 부족하다.

결국 맞벌이 등 낮에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가정에서는 퇴근까지 아이를 계속 학원에 보내는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하는 실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입학연령 하향 논란' 전방위로…정부 해명에도 반발 확산(종합)
◇ 정부, 한발 물러섰지만…'先발표 後논의'에 '졸속' 비판
지난 29일 학제개편안 발표 직후부터 주말 내내 반발이 격화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1살 하향 조정하기로 한 교육부의 학제 개편안과 관련해 박 부총리에게 다양한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박 부총리도 이날 오전 언론 인터뷰에 나선 데 이어 오후에는 여의도 한국교육안전시설원에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자청해 해명했다.

그는 "국가교육위원회 공론화 과정 등을 통해 열린 자세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대안으로 목표를 이루도록 정부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밑으로까지 떨어지면서 국정운영 전반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국민 전체에 미치는 체감도가 크고 민감한 교육 정책 이슈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여론 흐름이 더욱더 악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지난달 30일 낸 입장문에서 "이번 발표는 민주주의의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며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공약을 후보자 시절에 미리 했다면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회 각계에서는 이번 학제개편 추진 절차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도교육청과 교원,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각도로 방안들을 검토하고 나서 발표했어야 하는 사안을 급작스럽게 내놓고 나서 "아직 검토 중이며 결정된 것은 없다"고 해명하는 것 자체가 선후 관계가 바뀐,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발표 당시 '6-3-3'의 12학년제를 유지하고, 이르면 2025년부터 3개월씩 순차적으로 4년에 걸쳐 앞당겨 입학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등 유력하게 검토중인 방안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시도교육청과 협의를 거쳤는지 질문에 박 부총리는 "교육청과 공식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며 "시작을 하면 교육청과 관련단체, 학부모님들과도 의견수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교육부가 발표한 '4년간 25%씩 입학연령 하향' 시나리오에 대해 박 부총리가 이날 인터뷰에서 '1년에 1개월씩 12년에 걸쳐 입학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에는 박 부총리의 해명이 '논점과 동떨어졌다'는 비판 댓글이 2천여건 달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는 이날 대통령실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심도 있는 의견조사나 연구조차 없이 단순히 '요즘 애들 커지고 똑똑해졌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학제개편 추진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입학연령 하향 논란' 전방위로…정부 해명에도 반발 확산(종합)
◇ 野 중심으로 정치권서도 반대 기류…추진과정 험로 예고
학제개편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부터 여러 차례 검토됐던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부작용 가능성에 비해 실익이 적다는 판단 등으로 번번이 추진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입학연령 하향을 꺼낸 데 대해 '느닷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기류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학제 개편안도 박 장관의 과거 이력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던지기는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부총리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박 장관이 자신의 음주운전, 표절 의혹을 덮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학제개편이라는 핵폭탄을 던졌다는 의심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학부모, 교사, 교육청 등 여론수렴 과정조차 없었고 일단 질러놓고 무조건 밀어붙이겠다는 식"이라며 '위험한 과속난폭운전'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취학연령 만 5세 하향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유 위원장은 "기본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은 졸속 정책이며, 국민 상식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교육계 반대가 분명함에도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정책을 발표해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교육개혁은 이번 정부에서 이뤄내야 할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혁과제 중 하나"라며 구체적인 안은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여론을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지만, 학제개편안은 이러한 여론 반발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실적 여건상 추진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 부총리가 사회적 합의 도출 통로로 언급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미 법적 설치 가능 시점(지난달 21일)을 열흘이나 넘겼지만 위원 구성이 안돼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학제개편은 기본적으로 법 개정 사항이어서 초·중등교육법을 고쳐야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거센 여론 반발을 뚫고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취학 의무를 규정한 제13조에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3월 1일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