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된 기업을 '사용자'로 봐선 안 돼"…파견의 반복성·목적 등 기준 제시
대법 "대기업 계열사 간 직원 전출, '파견'과 달라" 첫 판단
대기업 계열사 간의 '전출'은 파견법이 적용되는 '파견'과 외형상 비슷해도 목적과 고용 형태 등을 따지고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SK플래닛 직원 A씨와 B씨가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고유한 사업 목적을 갖고 독립적 기업 활동을 영위하는 계열회사 간 전출의 경우 전출 근로자와 원 소속 기업 사이에는 온전한 근로계약 관계가 살아있고, 원 소속 기업으로의 복귀 발령이 나면 기존의 근로계약 관계가 현실화해 계속 존속하게 된다"며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과 외형상 유사하더라도 그 제도의 취지와 법률적 근거가 구분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전출에 따른 근로관계에 대해 외형상 유사성만을 이유로 원 소속 기업을 파견법상 파견 사업주로, 전출 후 기업을 파견법상 사용 사업주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상당(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또 파견을 보내는 업체가 파견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 파견을 업으로 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는 ▲ 파견 행위의 반복성·계속성·영업성 ▲ 원 고용주의 사업 목적과 근로계약 체결의 목적 ▲ 파견의 목적과 규모·횟수·기간·태양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SK텔레콤의 플랫폼 사업 부문은 2011년 분할돼 전자상거래와 뉴미디어 콘텐츠 제공을 주업으로 하는 SK플래닛이 설립됐다.

SK텔레콤은 SK플래닛과 함께 '티밸리' 사업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SK플래닛과 SK테크엑스로부터 다수의 노동자를 전출받았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은 SK플래닛과 비용 정산 계약을 체결한다.

SK플래닛은 전출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법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고, SK텔레콤은 전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6개월마다 정산해 SK플래닛에 준다는 내용이었다.

SK플래닛은 이 정산금을 받아 임금을 지급했다.

원고 A씨는 1999년 SK텔레콤에 입사했다가 2011년 SK플래닛으로 소속이 변경돼 근무하던 중 '티밸리' 조직으로 전출됐고, B씨는 SK플래닛에 입사한 직후 '티밸리' 조직으로 옮겼다.

'티밸리' 사업은 2017년 끝났고, A씨와 B씨는 SK텔레콤 파견이 종료돼 다른 직원들과 함께 SK플래닛으로 복귀했다.

이후 두 사람은 자신들이 SK텔레콤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1심은 A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은 두 사람이 "SK텔레콤이 고용 의사 표시를 하라"며 낸 예비적 청구는 받아들였다.

SK텔레콤이 지분 대부분을 가진 SK플래닛이 2015년부터 2년 반에 걸쳐 매월 다수의 직원을 SK텔레콤 측에 전출한 사정 등을 종합하면 SK플래닛이 근로자 파견을 '업'으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파견법이 적용되는데, SK플래닛은 근로자 파견 사업 허가를 받지 않았으므로 SK텔레콤에 고용 의사 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SK플래닛을 '근로자 파견을 업으로 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SK플래닛이 A씨 등을 파견한 뒤 임금 상당액만 SK텔레콤으로부터 지급받았을 뿐 경제적 이득을 보지 않았다며 "기업집단의 사업상 필요와 인력 활용의 효율성 등을 고려한 기업집단 차원의 의사 결정에 따라 전출이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파견법이 규정한 직접고용 의무 규정은 근로자 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파견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그 입법 취지가 있다"며 "A씨 등이 근로자 파견의 상용화·장기화나 고용 불안 등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