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12일부터 시행…한국도 연금 부자 나올까
12일부터 DC형 퇴직연금(확정기여형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가 도입된다. 고용노동부는 5일 국무회의가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주요 내용을 규정하는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디폴트 옵션이란 가입자인 근로자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따로 결정하지 않은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가입자가 별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지정한 방식에 따라 자산운용사가 연금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해 준다는 의미다. 현재 DC형(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 퇴직연금은 가입자인 근로자가 직접 펀드 등을 통해 적극적인 운용이 가능하지만, 전문성이나 관심이 부족한 탓에 가입자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상품을 선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퇴직연금의 성장세에 비해 수익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은 295조6000억원이 적립됐다. 1년 전(255조5000억원)보다 15.7% 늘어나면서 급성장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퇴직연금 전체 연간수익률은 2.00%로 전년(2.58%) 대비 0.58%포인트 감소했다. 전체 적립금 295조6000억원 중 원리금 보장형이 255조4000억원으로 86.4%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원리금보장형의 수익률이 1.35%에 그친 탓이다.

○4주 안에 지시 없으면 사전지정방식으로 운용

고용노동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고용부와 금융위퇴직연금 담당 고위공무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심의위원회가 퇴직연금사업자가 사용자에게 제시할 상품인 사전지정운용방법을 심의한다. 정부는 제도 시행 이후 퇴직연금사업자의 신청을 받아 신속하게 심의·승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10월 중에는 심의위를 거쳐 첫 번째 승인한 상품을 공시할 예정이다.

현재 승인 가능한 상품은 △원리금보장상품 100% △펀드 상품(TDF, BF, SVF, SOC) 100% △원리금보장상품과 펀드 상품을 혼합한 포트폴리오 유형 상품이며, 심의위의 승인을 거친 상품만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된다. 심의위는 원리금보장상품의 경우 금리·만기의 적절성, 예금자 보호 한도, 상시 가입 가능 여부를 위주로 심의하고 펀드·포트폴리오 유형은 자산 배분의 적절성, 손실 가능성, 수수료 등의 사항에 대해 심의한다는 방침이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고용부로부터 승인받은 사전지정운용방법에 대한 주요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시한다. 사용자는 선택한 운용방법을 근로자 대표의 동의 절차를 거쳐 퇴직연금 규약에 반영해야 한다. 근로자는 상품 정보를 사업자로부터 받아 본인의 운용방법을 선정하면 된다.

기존 상품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4주간 운용지시가 없는 경우, 퇴직연금사업자는 "2주 이내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지정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이 운용된다"고 통지한다. 통지 후 2주 이내에도 운용지시가 없으면 적립금이 해당 운용방법으로 운용된다. 신규가입 후에 운용지시가 없는 경우에는 4주 대기 없이 바로 통지를 받게 되고 2주 이내에 지시가 없으면 사전지정 운용방법으로 운용된다.

사전지정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지 않은 근로자도 원하는 경우 사전지정 운용방법으로 바로 운용(Opt­-In)이 가능하며, 운용 중에도 근로자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상품으로 운용지시(Opt­Out)가 가능하다. 참고로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에 따라 기존 위험자산한도(70%)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전지정 운용방법은 적립금의 100%까지 운용이 가능하다.

퇴직연금 사업자도 승인받은 사전지정운용방법의 변경이 필요하다 판단되면 고용부로 부터 변경 승인을 받아 변경한다. 승인 사실과 변경 내용은 근로자에게 통지해야 하며, 변경 운용을 원하지 않는 가입자는 다른 상품으로 운용지시가 가능하다.

만약 거짓·부정한 방법으로 승인을 받았거나 사후적으로 승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경우 심의위에서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이때도 근로자에게 해당 사항을 즉시 통지해야 하고, 다른 금융상품으로 안내하거나 같은 위험등급의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을 이전하는 등 가입자 보호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개인형퇴직연금에도 동일하게 적용

사전지정운용제도 사항은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IRP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이다. 다만, IRP는 '사용자'가 없으므로 퇴직연금사업자가 승인받은 상품을 가입자에게 바로 제공하고 가입자가 본인의 사전지정운용방법을 선정하면 된다.

2006년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미국은 10년 가입자에게 연 8%가 넘는 수익률을 제공하는 등 ‘연금 부자’를 탄생시키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OECD 가입국의 대부분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원리금 비보장형으로 설계되는 디폴트옵션은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고 구제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증시 상황이 부진하면서 수익률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1분기 증권사들이 판매한 퇴직연금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사전지정운용방법의 운용현황 및 수익률 등을 분기별로 공시한다는 방침이다. 또 운용방법을 3년에 1회 이상 정기 평가해 승인 지속 여부를 심의하는 등 상품에 대한 모니터링 및 관리에도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그간 퇴직연금제도는 낮은 수익률 문제 등으로 근로자의 노후 준비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며 “지난 4월 도입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와 적립금 운용위원회, 7월에 도입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를 빠르게 현장에 안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