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진정성 느끼기 어려워…평상시에 잘해야!" 쓴소리
제12대 제주도의회 개원 "집행부 거수기 역할 그쳐선 안 돼"

"등굣길 교통정리 하는 정치인들 모습이 선거가 끝나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
선거 끝나자 사라진 제주 정치인들의 등굣길 교통정리
제주시 동 지역에 사는 학부모 이모(37·여) 씨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즈음 이처럼 볼멘소리를 했다.

6·1 지방선거 전에는 매일 아침 제주도 내 초등학교 주변에서 등굣길 교통정리 봉사활동에 열을 올리던 정치인들이었다.

특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도의원 선거 또는 교육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지역의 일꾼이 되겠노라며 허리를 90도 굽히는 '폴더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5월 31일 지방선거 전날까지만이었다.

대부분의 당선인은 본격적인 의정활동을 한 달가량 남겨놓고 있었지만, 지방선거가 끝나자 등굣길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더는 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낙선한 진보당 양영수 후보만이 선거 다음 날 경광봉을 들고 교통정리 하며 낙선 인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띌 뿐이었다.

학부모 이 씨는 "적어도 의정활동 시작하기 전까지 한 달가량 틈틈이 계속 이어간다면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란 믿음이 생겼을 텐데…. 선거용일 뿐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게 정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거 끝나자 사라진 제주 정치인들의 등굣길 교통정리
비단 등굣길 교통정리뿐만이 아니다.

동네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노인당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간다.

제주시 한 지역의 김모(82) 어르신은 "평상시에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던 정치인들이 선거철이 다 돼서야 노인당에 들르거나 전화 한 통 한다"며 "우리나라 선거가 항상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평상시에 잘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4일 제12대 제주도의회가 개원식을 열고 개원했다.

지역사회 공동이익을 꾀하고 주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하는 제주도의회는 제주도민의 대표기관이지만 여전히 도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역대 도의회를 보면 의원들의 막말과 갑질 논란이 이어지며 홍역을 치렀다.

직전 제11대 제주도의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성균 전 의원이 2018년 7월 12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의원이 묻는 말에) 반박을 하거나 의원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하거나 논쟁을 하거나 주장을 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식의 갑질 발언을 해 공무원노조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선거 끝나자 사라진 제주 정치인들의 등굣길 교통정리
또 같은 당 소속 양영식 의원은 2018년 9월 22일 사회관계망(SNS)에 욕설을 연상케 하는 '이 ㅅㅂㄴ아!'라는 댓글을 동료 의원을 향해 달아 문제가 됐다.

당시 민감한 제주 지역 현안이었던 대규모 개발 사업장에 대한 행정사무조사 요구안이 도의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는데, 양 의원은 찬성·반대·기권 의견을 낸 의원 전체 명단을 공개한 동료의원을 향해 비난하며 이 같은 댓글을 달았다.

당시 언론과 도민사회의 비난이 이어지자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 제주도의회 민주당 원내대표가 됐다.

국민의힘 소속 강충룡 의원은 2020년 12월 23일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저는 동성애, 동성애자를 싫어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안' 표결을 앞두고 "우리 자식들에게 동성애가 괜찮다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그것은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당 등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대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논란이 일었고, 인권위도 강 의원의 표현이 혐오 표현에 해당하며 "지방의회의 자정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강 의원 역시 이번에 제주도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됐다.

이번에 개원한 12대 도의회는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원 구성을 놓고 여야 간 신경전을 벌였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 간 입장이 엇갈려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 등 사실상 민생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

선거 끝나자 사라진 제주 정치인들의 등굣길 교통정리
지방의회는 지역사회 공동이익을 꾀하고 주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지방의회가 당리당략과 자기 이익에 매몰돼 제구실을 못 한다는 비판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적용된다.

제주도의회가 지난 2016년 특별자치도 출범 10년을 맞아 시행한 '의회가 지방정부 견제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도민 31.3%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는 더 부정적(33.5%)이었다.

KBS제주방송총국이 2019년 7월 도민 여론을 살피기 위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도의회의 성과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48.1%에 달했고, 도의회의 미흡 분야에 대해서는 '도민과의 소통'이라고 응답한 도민이 39.6%에 달했다.

특히, 인상적인 활동을 펼친 도의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5.3%가 '없다', 32.4%가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은 이날 제12대 제주도의회 개원식에서 "의회 내부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며 "지방자치의 주역은 의원들이 아닌 도민이다.

의원은 '도민을 위한 무한봉사자'라는 자세를 늘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의회가 제주 비전의 산실이 되고, 우리 의원 한 분 한 분이 전략가가 되어 제주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국장은 "12대 도의회는 집행부의 거수기 역할에 그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의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며 "제2공항 문제 등 제주 사회의 갈등 현안을 조정하고 민의를 대변하고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