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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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주92시간 근로'가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연장근로 총량을 '월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주 12시간까지만 제한되는 연장근로를 월 단위(1주12시간을 1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52시간)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월단위 총 연장근로시간 52시간을 한주에 몰아 넣을 경우 기존 1주 40시간 근로에 더해 1주 총 92시간까지 근로가 허용된다"고 주장해 논란이 빚어진 상황이다. 사실일까.

주92시간, 불가능한 계산

발표 내용에 따르면 주92시간 근로는 어려워보인다. 이정식 장관은 이 날 발표에서 "(총량관리제를 해도) 근로자 건강권 보호 조치를 병행하겠다"라고 밝혔다.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근로일 간 휴게시간 11시간 보장"을 예시로 들었다.

고용부는 "'92시간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근로자 건강 보호 조치 검토를 시작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선 부인했다. 실제로 고용부도 장관 공식 발표 전 기자들이 '어떤 근로자 건강 보호조치'를 도입할 계획인지 문의하자 '11시간 휴게 보장'을 언급하기도 했다.(▶본지 6월23일자 "尹정부, '주52시간제' 손본다…'연장근로 한달 총량 관리제' 도입" 참조). '11시간 휴게 보장'은 기존 선택·탄력근로제 등에 이미 도입된 제도다. 다만 자세한 내용은 고용부의 '연구회'를 통해 결정될 사항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건강 보호 조치'인 '근로일 간 휴게시간 11시간 보장'을 전제로 하루 최대 근로시간을 계산해보자. 하루 근로가 허용되는 시간은 최대 13시간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라 8시간 마다 1시간, 4시간 마다 30분 휴게시간을 부여하게 되면 1시간30분이 휴게시간으로 빠져, 1일 최대 근로시간은 11.5시간이 된다.

1주 92시간을 주장하는 측은 11.5시간에 7일을 곱해 "정부의 조치 대로 해도 1주 80.5시간"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55조는 '1주일에 1일 유급 주휴일'을 반드시 부여하도록 돼 있다.

주 6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결국 1주 근로는 69시간이 최대치다.

"현행 제도 상 주휴일에 일을 할 수 있으니 주7일을 전제로 하면 80.5시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도 "사실상 주 60시간제(주52시간+주휴일 근로)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주92시간, 주80.5시간 근로는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총량관리제 도입하려면 '노사 합의' 필요

총량관리제가 도입되면 기업이 내키는 대로 1주에 69시간을 몰아 일을 시킬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총량관리제 도입에 대한 동의를 '근로자 대표'가 아닌 '개별 근로자'에게 맡길 것이란 주장도 제기한다. 개별 근로자는 회사의 압박에 버틸 힘이 없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총량관리제는 연장근로의 활용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므로 '유연근로제'의 일종이다. 근로기준법 제4장에서는 유연근로제(선택·탄력적 근로제 등)와 관련된 조항이 51조부터 52조 사이에 배열돼 있다. '총량관리제'가 도입된다면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다른 유연근로제와 병렬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다른 유연근로제를 보자. 51조(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 51조의2(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 모두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한다고 규정한다. 52조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에 따라…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58조 근로시간 특례제도 조차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필요로 한다.

전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요건으로 하는데 총량관리제만 덩그러니 '개별근로자 동의'로 밀어넣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고용부도 당일 보도자료 등에서 "'노사 합의'로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 관리할 수 있게"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주52시간제 기본틀 유지라는 고용부의 입장 △'당사자 합의'를 내 건 연장근로 여부와 달리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조건을 걸고 있는 다른 유연근로제와의 체계적합성 △근로기준법 개정 부담 최소화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만에 하나 '개별 근로자 동의' 형식으로 바꿀 계획이었다면 총량관리제가 아니라 바로 그 내용이 이번 '노동개혁 방향' 발표의 핵심이 됐을 것이다(고용부가 '노사 합의'라는 단어를 '협의' 또는 '당사자 간 합의'로만 바꿨어도 충격적이었을 것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결국 근로자대표와 합의, 혹은 이에 준하는 조치가 총량근로제 도입 조건이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는 상당한 근로자 보호장치다.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근로자 대표 합의가 필요한 선택근로제 활용 사업장은 2020년에서 6.8%에서 지난해 6.2%로 줄었다.

한 노동법학자는 "정부 발표를 보면 총량관리제는 결국 기존 유연근로제의 '노사 합의' 틀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도입한다 해도 활용률이 현행 유연근로제처럼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국면에서 '개별근로자 동의 방식'의 도입 가능성을 우려한 것은 두, 세단계를 건너뛴 것으로 보인다. '과로 우려'라는 방향성에서는 수긍할만 하나, 이번 정부의 발표를 트집 잡을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