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재연구소 청포대 발굴…기와 상부·칼자루 모양 장식품 추가 출토 "서울서 지방 가던 난파선에 실렸던 듯…구체적 매장 경위는 의문"
조선시대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머리 장식기와 '취두'(鷲頭) 상부와 취두에 부착하는 칼자루 모양 토제(土製) 장식품인 '검파'(劍把)가 충남 태안 청포대 갯벌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청포대 갯벌에서는 2019년 취두 하부와 지붕에 얹는 장수상, 지난해 취두 상·하부가 각각 나온 바 있다.
검파는 작년 취두 한 쌍과 일체를 이루는 유물로, 완전한 형태의 조선 전기 취두 실물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지난 5월 발굴조사를 통해 찾은 취두 상부와 검파를 비롯해 2019년 이후 청포대 갯벌에서 확보한 조선 전기 왕실 관련 주요 기와들을 공개했다.
공개된 유물은 상부와 하부로 이뤄진 취두 2건, 검파 1점, 장수상 1점이다.
취두는 2019년 조개를 캐던 주민이 신고한 하부와 올해 발견된 상부가 짝을 이루고, 작년에 발견된 상·하부가 또 다른 짝이다.
하부는 용이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이고, 상부에는 꼬리 등이 표현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장수상이 조선 전기 양식을 띠고 있고, 취두와 검파도 주변 지역에서 수습됐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시기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또 조선 전기에 용무늬는 왕실이 사실상 독점한 상징이라는 점에서 취두, 검파, 장수상이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물품이라고 추측했다.
조선시대 궁궐 건축물 지붕에는 취두, 잡상(雜像) 등 여러 장식기와를 사용했다.
취두는 두 부분 또는 세 부분으로 분리해 만든 다음, 쇠못으로 고정해 지붕에 얹었다.
잡상은 추녀마루 위를 장식하는 기와로 장수상을 보통 맨 앞에 배치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특히 길이 40.5㎝, 폭 16㎝, 두께 7㎝, 무게 4.2㎏인 검파를 주목했다.
검파 앞면과 뒷면에는 2단 구름무늬가 있고, 아래쪽은 사각형 구멍에 부착할 수 있도록 자루를 갖췄다.
김동훈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검파는 빗물이 취두 내부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장식품이었다"며 "취두에 표현된 용이 용마루(지붕 가운데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를 갉아 먹지 말라는 의미 혹은 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관은 "청포대 갯벌 검파의 구름무늬는 창덕궁 인정문에 있는 조선 후기 용머리 장식기와의 검파가 간략한 막대 모양인 점과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와 연구자인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출토품 중에는 검파가 핵심이 되는 유물"이라며 "중국 자료를 보면 검파는 취두에 있는 게으른 용이 화재로부터 건물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취두 한 쌍은 전반적으로 형태가 유사하나, 용 문양의 갈퀴 표현 방식과 구레나룻 사이 돌기 개수 등이 다소 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취두는 전체 높이가 103㎝이며, 가로 길이 83∼85㎝, 두께 22㎝, 무게 120㎏이다.
조사단은 "왕실 특수기와 연구에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며 "경복궁 창건 시기 건물, 숭례문, 양주 회암사지 등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 모습을 유추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관장은 "취두는 화재를 막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며 행운을 바라는 기능을 했던 것 같다"며 "수중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기와 출토 자료이고,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조사단은 취두 등이 태안 갯벌에 묻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김 연구관은 "서울 용산 일대 와서(瓦署)에서 만든 왕실 기와를 실은 배가 한반도 남쪽으로 향하다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며 "임금이 잠시 머물던 행궁이나 태조 초상화를 모신 전주 경기전 같은 곳에서 왕실 기와를 썼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8월 중순까지 추가 발굴조사와 수중 탐사를 진행해 유물이나 옛 선박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며 "왕실 장식기와 생산과 유통에 관한 연구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호우가 이어진 11일 충북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피해가 이어졌다. 11일 청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지난 8일 이날 오후 8시까지 지역별 강수량은 청주 371.9㎜, 충주 339.8㎜, 제천 302.5㎜, 증평 327.5㎜, 괴산 290.5㎜, 음성 313㎜, 단양 297㎜ 등이다. 오후 4시 호우주의보가 모두 해제되면서 비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나흘간 큰비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괴산군 청안면 19번 국도에서는 자갈과 토사가 쏟아져 내리면서 구방삼거리에서 부흥사거리까지 4㎞ 구간이 전면 통제되다가 오후 6시께 운행 재개됐다. 이외에도 청주, 옥천, 증평, 진천, 음성, 괴산, 단양 등 7개 시·군의 하상도로가 침수돼 차량 통제가 이뤄졌다. 청주와 보은, 영동 등 9개 시·군의 둔치주차장 26곳도 침수됐다. 이날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의 동주초등학교 시청각실 228㎡가 빗물에 잠겼고 천장텍스 8㎡가 떨어졌다. 윤건영 충북도교육감은 이 학교를 찾아 "기상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학교 시설물 점검과 학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충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접수된 공공시설 피해는 배수 불량 46건, 나무 쓰러짐 20건, 제방 유실 2건 등 119건에 달했다. 사유시설 피해 신고도 주택·상가 침수 32건, 배수 불량 23건, 차량 침수 18건, 축대 파손 3건 등 총 114건 이어졌다. 청주 옥산면에서는 비닐하우스 300동이 침수됐는데, 이날까지 접수된 도내 농작물 피해 면적은 13.2㏊에 달한다. 충북도와 시·군은 12일 오전까지 5∼4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인명 피해 발생 우려 지역을 중심으로 예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이날 침수 현장을 둘러보면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자당 의원들과 함께한 수해 복구 자원봉사 현장에서 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자 공개 사과했다.김 의원은 이날 봉사활동 전 면장갑을 끼며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했다. 당시 김 의원 양옆에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임이자 의원이 있었는데, 임 의원이 김 의원의 발언에 팔을 찰싹 때리는 모습이 포착됐다.해당 발언이 문제가 되자 김 의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엄중한 시기에 경솔하고 사려 깊지 못했다"며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남은 시간 진심으로 수해복구 활동에 임할 것이며 수해를 보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강조했다.김 의원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 앞에 엎드려 사죄드린다"면서 한차례 더 고개를 숙였다. 김 의원은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수해를 입은 분을 위로해드려야 할 텐데 오히려 심려를 끼쳤다"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고 적었다.그는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드린다"며 "그 어떤 말로도 저의 잘못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이번 일로 저와 국민의힘의 수해복구에 대한 진정성까지 의심하진 말아 주길 간절히 바란다"며 "저는 수해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수해 현장에서 함께하겠다"고 덧붙였다.주호영 비대위원장은 이날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수재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놓치지 말고, 장난치거나 농담하거나 사진 찍는 일도 안 했으면 좋겠다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고인돌·경남도기념물) 훼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미 수개월 전에 중장비를 이용해 바닥의 박석(얇고 넓적한 돌)을 걷어낸 정황이 확인됐다. 그간 김해시는 문화재 당국과 협의 없이 정비 공사를 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장비 사용은 줄곧 부인해왔다.1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지난 4월 당시 구산동 지석묘 부근 사진에 따르면 김해시가 추진하는 정비 공사 과정에서 묘역에 있던 박석을 이미 모두 걷어낸 상태로 보인다.올해 4월 24일 낮에 촬영한 이 사진은 공사장 인근 아파트에서 찍은 것이다. 과거 유적을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분명하다.2017년 김해시가 제공한 사진에는 덮개돌인 상석(上石)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박석이 길쭉한 모양으로 놓여 있으나, 올해 4월 촬영한 사진에서는 이를 찾기 힘들다. 구산동 지석묘의 경우, 박석이 묘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묘역 넓이가 1615㎡, 약 488평에 달하는데 올해 4월 찍은 사진에는 상석 위쪽에 놓여 있는 돌무더기를 제외하고는 돌 흔적을 찾기 어렵다.무더기로 쌓인 돌은 크기가 제각각인데 어떠한 표식도, 배열도 없는 상태다. 박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사진에는 굴착기(포클레인) 1대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토양 상태 등 사진에 나온 현장 상황을 고려하면 굴착기는 박석이 있던 곳을 오가며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앞서 김해시는 햇빛, 비바람에 훼손된 바닥 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빼 고압 세척, 표면 강화처리를 한 후 다시 그 자리에 박아넣었고 중장비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