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가입자 보험료 재산·자동차 비중 크게 줄어…'소득 중심 부과' 틀 마련
'무임승차' 피부양자, 가입자 ⅓인데…'피부양자 재산기준 유지' 논란 예상
자영업자 건보료 불공평 줄였지만…피부양자 개혁은 후퇴
정부가 오는 9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을 단행하기로 하면서 여야 합의를 통해 추진하기로 한 건보료 개혁이 마무리를 보게 됐다.

2018년 1단계 개편에 이은 이번 개편으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자영업자, 일용직 등)에게 과도한 보험료를 물게 하는 불공평함은 다시 한번 해소되게 됐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9월부터는 지역가입자에 대한 재산공제가 크게 확대되고 고액의 자동차에만 보험료가 부과돼 보험료 부담이 크게 줄게 된다.

다만, 건보료 개편의 또다른 핵심축 중 하나인 '고소득 피부양자의 자격 박탈'과 관련해서는 재산 기준을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해 개혁의 폭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건보료 부과체계는 소득에만 보험료율에 따라 보험료를 물리는 직장가입자와 소득뿐 아니라 재산과 자동차에도 보험료를 부과하는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돼 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과도하고 고소득·고액자산가가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일이 많아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가 계속 제기돼왔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진통 끝에 2단계에 걸친 개편의 틀에 합의해 2017년 3월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이어 2018년 7월 1단계 개편을 시행하면서 4년 뒤를 2단계 개편 시점으로 예고했다.
자영업자 건보료 불공평 줄였지만…피부양자 개혁은 후퇴
◇ 소득 '등급제' 폐지…재산 5천만원 공제·4천만원 이상 車에만 보험료
복지부는 이번 개편에서 지역가입자 859만 세대 중 65%(561만 세대)의 월 보험료가 15만원에서 11만4천원으로 3만6천원 인하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2조4천억원가량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개편에 따라 지역가입자에 대한 소득보험료는 등급제에서 정률제로 바뀐다.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97등급으로 나뉘어 보험료가 부과됐는데, 9월부터는 직장가입자처럼 소득의 일정비율(2022년 기준 6.99%)이 보험료로 부과된다.

소득등급제에서는 저소득층의 보험료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역진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률제로 인해 예를 들어 연소득 500만원인 지역가입자의 소득보험료는 등급제에서 5만300원이던 것이 정률제에서는 2만9천120원으로 낮아진다.

재산보험료를 산정할 때 기본 공제하는 액수도 상향 조정한다.

현재는 재산금액 등급에 따라 과세표준액에서 500만~1천350만원을 차등 공제하는데, 2단계 개편으로 이 공제 액수가 5천만원(공시가격 8천300만원·시가 1억2천만원 상당)으로 늘어난다.

복지부는 이번 개편으로 전체 지역가입자 중 재산보험료를 납부하는 세대의 비중이 60.8%(523만세대)에서 38.3%(329만세대)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가 5억원 상당(과세표준액)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지역가입자가 있다면 현재는 12만5천430원의 재산보험료를 내야 하지만, 개편 후에는 공제 액수가 상향되면서 재산보험료가 10만9천830원으로 낮아진다.

자동차 보험료는 1단계 개편에서 1천600㏄ 이하, 9년 이상 사용한 차량은 면제되고 1천600~3천㏄ 차량에 대해서는 30% 보험료 경감 조치가 취해졌는데, 2단계 개편에서는 4천만원 미만의 자동차는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동차 보험료 부과 대상은 개편 전 132만세대(144만명)에서 8만세대(9만명)로 줄어든다.

복지부는 자동차 보험료가 2천898억원에서 280억원으로 90.3%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자영업자 건보료 불공평 줄였지만…피부양자 개혁은 후퇴
◇ 고액 연금소득자 보험료 상승…최저보험료 대상 늘지만 액수 상향
이번 개편으로 직장가입자의 98%는 보험료 변동이 없지만, 월급 외에 금융이나 임대소득(보수 외 소득)이 높은 경우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현재는 보수 외 소득이 연간 3천4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소득월액 보험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데, 개편으로 인해 기준이 2천만원으로 낮아졌다.

보수 외 소득 2천만~3천400만원 직장인이 9월부터는 예전에는 내지 않던 추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연금 소득에 대한 보험료 반영 비율도 올라가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은퇴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 중 공적 연금(국민·공무원·사학·군인 연금) 소득과 근로소득의 경우 소득보험료를 산정할 때 30%만 반영하던 것이 50%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연금소득 보유자의 4.2%(연금소득 월 341만원 이상·8만3천명)가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저소득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최저보험료는 대상을 확대하면서 보험료를 늘리는 방식으로 바뀌는데, 이 역시 기존 최저보험료 대상자인 저소득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는 연간 1천만원 이하인 저소득자는 일정 액수(1만4천650원)의 '최저보험료'만 내는데, 저소득자의 기준을 연간 소득 336만원 이하로 확대하고 최저보험료는 직장가입자 최저보험료에 맞춰 1만9천500원으로 높인다.

정부는 갑작스러운 부담 증대를 막기 위해 2년간 인상분 전액 경감, 이후 2년간 인상분 50%를 경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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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발 우려에 피부양자 재산 기준 그대로…'무임승차' 문제 남아
이번 개편으로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와 지역가입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 해소라는 목표에는 진일보하게 됐지만, 고소득·고액자산가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됐다.

건강보험제도에는 직장가입자인 가족에게 피부양자 등록을 하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피부양자 제도가 있는데, 부담 능력이 있는데도 피부양자로 인정받는 '무임승차자'가 많다는 문제가 있다.

작년 9월을 기준으로 건강보험 전체 가입자 5천139만8천명 중 피부양자는 1천847만6천명으로 35.9%나 된다.

피부양자의 요건은 소득과 재산 두가지다.

이번 개편에서는 당초 여야간 합의와 달리 재산 요건을 그대로 둔 채 소득 요건만 강화됐다.

현재 피부양자 탈락의 소득 요건은 합산 소득(금융소득, 공적연금, 근로·기타 소득)이 3천400만원을 초과할 경우인데, 2단계 개편에서는 이런 기준이 2천만원을 초과할 경우로 넓어졌다.

재산 요건은 '재산 과표상 5억4천만원(시가 13억원, 공시 9억원) 이상'일 경우다.

계획대로라면 이를 '재산 과표가 9억원을 초과하거나 연소득이 1천만원을 넘으면서 재산 과표가 3억6천만원을 초과한 경우'로 강화했어야 했지만 현행대로 유지된다.

당초에는 2단계 개편에서 유소득 피부양자의 21%인 47만세대(59만명)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재산 요건이 유지되면서 이런 목표는 절반 수준인 27만3천명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이는 피부양자들이 지역가입자에 편입돼 보험금을 부담하게 될 경우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최근 주택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공동주택의 공시지가가 55.5%나 상승했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지난 24일 당 현안점검회의에서 "수익이 없이 연금소득만으로 생활하시는 고령 은퇴자 등에게는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부양자 무임승차 문제가 '능력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혜택을 받는다'는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이슈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개혁이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개편 후에도 피부양자는 여전히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

건강보험은 저출산으로 돈 낼 사람은 급격히 줄고, 고령화로 건강보험 보장 혜택을 받을 사람은 크게 늘면서 지속가능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단계 개편으로 인해 건보 재정은 연간 2조80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자영업자 건보료 불공평 줄였지만…피부양자 개혁은 후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