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소득국 10세 10명 중 7명 글 못 읽어…한국도 학습 결손 현실화
학습 위기로 전 세계 학생 생애 소득 2경7천조원 줄어들 수 있어

"12살이 돼서도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제 이름의 철자조차 몰랐고, 날이 갈수록 의사소통이 어려워졌어요.

아이 때 저 같은 창피함을 다른 누구도 겪지 말아야 해요.

"
남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는 그레이스 에리카 메키 주마(16)는 기초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하고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모든 아이가 10살 때까지 잘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들은 중·저소득국의 열악한 교육 환경이 빚은 이런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악화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에 따른 학습 결손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인한 식량 위기로 가난한 나라와 저소득층의 생계난이 커지면서 기초 교육 차질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슈 In] 코로나19에 우크라 전쟁까지…악화하는 지구촌 '학습 빈곤'
◇ 코로나로 세계 학습 빈곤율 52%→64%…중·저소득국은 57%→70%
세계은행과 유니세프 등이 이달 23일 내놓은 '글로벌 학습 빈곤 현황: 2022 업데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학습 빈곤율은 코로나19 대유행 시작 직전인 2019년 51.9%에서 2022년 64.3%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중 중·저소득국의 학습 빈곤율은 같은 기간 57.0%에서 70.0%로 치솟았다.

학습 빈곤(learning poverty)은 10살이 될 때까지 간단한 글을 읽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현재 중·저소득국의 10세 어린이 10명 가운데 7명은 이런 상태에 있는 셈이다.

저소득국의 학습 빈곤율은 90.6%에서 91.7%로 상승했다.

고소득국의 학습 빈곤율은 8.0%에서 13.6%로 높아졌지만 중·저소득국에 비해 매우 낮다.

중·저소득국 가운데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지역 나라의 학습 빈곤율은 52.3%에서 79.0%로 급등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86.3%에서 89.4%로 상승했다.

남아시아에서는 59.8%에서 78.0%로, 중동·북아프리카에서는 63.4%에서 70.0%로 높아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빚은 전례 없는 학교 교육 중단이 학습 빈곤을 악화시킨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가 정점에 이를 때 188개국에서 어린이 16억명이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세계 각국이 2020년 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대면 수업을 완전히 중단한 날은 평균 141일로 파악됐다.

이런 중단 일수는 남아시아(평균 273일),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225일), 중동·북아프리카(183일)에서 많았다.

원격 수업이 대면 수업의 대안으로 도입됐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인터넷과 디지털 교육기기 등 정보기술(IT) 기반시설과 장비가 부족한 중·저소득국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 될 수 없었다.

부유층 아이들만 원격 수업을 받아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상황 탓에 유엔 회원국들이 2030년까지 공동 달성하기로 합의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가운데 교육 분야 목표를 달성하는데 빨간불이 켜졌다.

이 목표는 모든 아이에게 공평한 양질의 초·중등 교육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늘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이 가시화한 것으로 평가됐다.

통계청은 지난 4월 '한국의 SDGs 이행보고서 2022'에서 교육부 자료를 인용해 이같이 밝혔다.

예컨대 영어 과목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중학교 3학년은 2019년 3.3%에서 2020년 7.1%로, 고등학교 2학년은 같은 기간 3.6%에서 8.6%로 증가했다.

지역 규모별로 2020년 중3 수학 과목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보면 읍면 지역이 18.5%로 대도시(11.2%)보다 높았고, 지역 간 격차는 7.3%포인트로 2019년(4.9%포인트)보다 커졌다.

[이슈 In] 코로나19에 우크라 전쟁까지…악화하는 지구촌 '학습 빈곤'
◇ 불어나는 생애 소득 손실…전 세계 GDP의 17% 해당 금액
기초 학습이 결여된 상태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했을 때 생산성 하락과 수입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됐다.

유니세프와 세계은행 등은 학교 수업 중단 영향으로 전 세계 학생들이 평생 벌 소득에서 21조 달러(2경6천943조원)를 잃게 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런 손실은 2020년에 추정한 10조 달러(1경2천830조원), 지난해에 추정한 17조 달러(2경1천811조원)를 크게 웃돈다.

21조 달러의 손실 추정액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조 달러가 중·저소득국 학생들에게서 발생한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늪에 빠지고 식량 위기와 생계난이 커지면서 중·저소득국의 학습 빈곤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1년 6개월이나 학교 문을 닫았던 스리랑카는 최악의 경제 위기까지 닥쳐 휴교를 반복하고 있다.

이달 28일부터 2주 일정으로 또다시 학교 문을 닫았다.

심각한 기름 부족을 아이들이 학교에 갈 교통편의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스리랑카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 때와 같이 온라인 학습 시스템의 재도입을 학교들에 요청하고 있지만 많은 아이와 가족들은 관련 비용을 감당할 돈이 없다"며 "많은 시골 지역의 아이들은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들은 학습 빈곤의 악화를 막기 위해 각국이 기초 교육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부와 교육계, 시민사회, 기업들이 합심해 재정 지원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