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 발표…여소야대서 난항 예상
양대노총 "저임금·장시간 노동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 비판
尹정부 '노동시장 개편' 드라이브…주52시간제·임금체계 손본다
고용노동부가 23일 주 52시간제를 비롯한 현행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 방침을 발표하면서 '윤석열표 노동개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가 걸릴 것임을 예고했다.

산업구조 변화와 인구 고령화 등으로 노동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노동계는 결국 근로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또 이날 발표 내용을 추진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해 여소야대 국면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 '주단위' 연장근로 시간 '월단위' 계산도 가능하게 개편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의 핵심은 근로시간 개편, 임금체계 개편 등 크게 두 가지다.

이날 브리핑은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사실상 노동부에 지시하면서 마련됐다.

이 장관은 "우리 노동시장은 4차 산업혁명, 저출산·고령화 등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 규범과 관행으로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산업이 발달하고 디지털 기술 발달로 기업별·업종별 경영 여건이 복잡·다양해지는 만큼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발표에서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노사 합의를 거쳐 '월 단위'로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 1항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제53조 1항은 '당사자(노사)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 여야 합의로 이 같은 내용의 '주 최대 52시간제'를 도입했다.

다음 달이면 이 제도가 전면 시행된 지 1년을 맞는다.

노동부의 발표 내용은 현재 1주에 최대 12시간 가능한 연장 근로를 한 달을 기준으로 최대 48∼60시간(4∼5주 기준) 가능한 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주 단위'는 유효하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월 단위'로도 관리해서 쓸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길을 터주겠다는 의미"라며 "'주 단위'를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달마다 일수가 28∼31일로 다르기 때문에 평균적인 '월 단위' 최대 연장근로 시간은 52.1시간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도입되면 경우에 따라 1주일 간 근로 시간이 92.1시간(40+52.1시간)에 달할 소지도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정안은 '1개월 범위 안에서 일주일 평균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한다'는 식으로 기술적으로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尹정부 '노동시장 개편' 드라이브…주52시간제·임금체계 손본다
◇ 연공성 임금체계, 직무·성과 중심으로…이정식 "중대재해법은 일방적 개정 쉽지 않아"
임금체계 개편 방안은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성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골자다.

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천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급 운영 비중은 70.3%에 달할 정도로 연공성이 강하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지만, 이직이 잦은 저성장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닌 근로자에게 많은 급여를 줘야 하므로 고령 근로자의 고용 유지율이 낮고, 퇴직 후 전직하는 과정에서 소득 수준과 일자리 질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것이 노동부의 진단이다.

이 장관은 "우리나라 임금제도 전반에 대한 실태 분석과 해외 임금체계 개편 흐름 및 시사점 등을 토대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115석, 더불어민주당이 170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장관은 "미래 지향적인 노동시장을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는 여야 간 크게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실사구시적인 자료를 토대로 여야 의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이 장관은 경영계의 법 개정 요구가 강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는 "시행된 지 얼마 안 됐고 아직 (법원의) 법적인 판단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인 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 노동계 "깊은 실망과 분노"…경영계 "방향성 공감"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 같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했다.

노동계는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했지만, 경영계는 큰 틀에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논평에서 "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앵무새를 자임하고 나섰다"며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전혀 없이 편법적인 노동 시간 연장을 위한 정책만을 내놨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노동부 장관이라면 물가 폭등 시기에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비정규직 대책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내놓아야 한다"며 "대통령의 관심사인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 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에서 "정부의 발표 내용은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역행하는, 사용자단체의 숙원 과제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경제단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방향성은 공감한다"면서 "향후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경총은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요건 개선,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등의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입장문에서 "이번 발표에 중소기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노사합의에 의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등이 포함됨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일할 맛 나는 그런 노동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