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부 출신 사장' 김유열 "마른 수건만 짜는 건 혁신 아니다"
"프리미엄 콘텐츠 만들면 소비재 아닌 내구재 될 수 있어"
"글로벌 플랫폼도 수익 연결…'저출산·독서율 저하' 장기 프로젝트 기획"
EBS 신임 사장 "콘텐츠 대혁신…초대형·초저가형 양극단 전략"
"EBS의 역할은 고상한데, 이걸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고상하지 않게 설계돼 있어요.

그렇다고 좋은 콘텐츠 만들 수 있는 돈이 생길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
취임한 지 100여 일이 지난 김유열(57) EBS 사장은 21일 경기도 고양시 EBS 본사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콘텐츠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사장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등의 공세에 전통 방송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요즘 교육공영방송사인 EBS 역시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그가 지난 3월 취임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콘텐츠 경쟁은 치열한데, 여기에 대응할 EBS 자본력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했다.

EBS 1TV의 1년 제작비는 330억∼340억 원에 머문다.

김 사장은 그간 외부 인사가 영입되던 사장 자리에 앉은 첫 EBS 출신 인사로 누구보다도 EBS 현실에 맞는 혁신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1992년 PD로 입사한 김 사장은 편성기획부장, 뉴미디어부장, 정책기획부장, 학교교육본부장, 부사장 등 보직을 두루 거쳤고, 2000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EBS의 대대적인 편성 개편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2000년에는 전체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하고 어린이와 교육 중심 콘텐츠를 배치했고, 2008년에는 프라임 타임대 프로그램 70%를 폐지하고 교육 다큐를 집중 편성했다.

지금도 사랑받는 EBS 대표 콘텐츠 '세계테마기행', '다큐프라임', '한국기행' 등도 이때 김 사장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EBS 신임 사장 "콘텐츠 대혁신…초대형·초저가형 양극단 전략"
김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이런 경험을 살려 '콘텐츠 대혁신'을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제작 환경이 어렵다고 계속 마른 수건만 짜내는 건 혁신이 아니다"라며 "프라임 타임대에는 교육방송 정체성에 입각한 영향력 있는 초대형 콘텐츠를, 그렇지 않은 시간대에 초저가형 혁신 콘텐츠를 선보이는 양극단 전략을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EBS를 대표할만한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제작과 OTT 콘텐츠들에 대항할만한 실험적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동시에 끌고 가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다들 콘텐츠를 소비재라고 생각하는데, 콘텐츠도 충분히 내구재가 될 수 있다"며 "바로 프리미엄 콘텐츠를 만드는 건데, '다큐프라임'이 그 성공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다큐프라임' 제작비는 약 5천만 원으로 지금도 국내 다큐 제작비 중 높은 편에 속한다.

EBS가 거액의 제작비를 들였던 것은 그저 그런 콘텐츠 여러 개를 편성하는 대신 제대로 만든 프로그램을 여러 번 편성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 '다큐 프라임'은 인기에 힘입어 다섯 차례까지 재방송되기도 했고, 해외 판매도 이뤄졌다.

김 사장은 "재방송 시간대는 정반대의 전면 쇄신을 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지금 편당 가격이 500만 원짜리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를 50만 원짜리 10편으로 만드는 식으로 혁신을 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유튜브를 보면 스튜디오나 방송 제작용 장비가 없어도 충분히 수준 있는 콘텐츠들이 나오는데, 이런 제작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실험을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인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며 "시청자들은 EBS에 다양한 콘텐츠들이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저렴한 제작비로 실험적인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게 되면 현재 40%에 달하는 재방송 비율도 20%대까지 낮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저가형 실험적 콘텐츠들을 창의적인 발상으로 EBS의 가치를 담게 될 것이라고 했다.

EBS 신임 사장 "콘텐츠 대혁신…초대형·초저가형 양극단 전략"
김 사장은 "콘텐츠 혁신과 재정 개선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혁신적인 콘텐츠가 나오면 광고 실적도 개선되고 OTT 등 콘텐츠를 달라는 곳도 많아지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재정적인 개선도 서서히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EBS만이 할 수 있는 지식·교육 콘텐츠로 유니크한 OTT를 구축·운영할 계획이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방안 등 자체 수익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며 "세계 석학 강의인 '그레이트 마인즈'로 지난 2월부터 글로벌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더욱 발전시켜 수익으로도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신료 인상 등으로 공적 재원 비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EBS의 공적 재원은 전체의 30% 수준이다.

김 사장은 또 임기 중 장기 프로젝트로 저출산, 독서율 저하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위해 관련 이슈에 대한 연구 분석과 논의를 하는 특별조직 '교육비전프로젝트국'도 신설했다.

김 사장은 "방송에서 장기적으로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면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EBS의 역할로는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새로운 솔루션을 찾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