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전기자전거로 배달하던 직장인 A씨. 그는 ‘콜사’(배달 콜이 오지 않는 상황)가 계속되자 대리운전에 뛰어들었다가 한 달 만에 일을 접었다. A씨는 “20%에 가까운 수수료와 새벽택시비, 보험비, 프로그램 이용료 등을 빼면 수입이 많지 않았다”며 “최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콜까지 생겨 부담이 컸다”고 했다.

대리운전 중개 업체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일감이 줄어든 배달 라이더들이 대리운전에 대거 뛰어들자 고율의 수수료와 일감 배분 조건 등을 마음대로 적용하는 등 ‘배짱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리운전 프로그램사 로지는 이른바 ‘숙제’ 제도를 지난 4월 재개했다. 밤·새벽 피크타임에 로지 프로그램이 배정한 일정 콜을 수행한 기사에게 다음날 선호하는 도착지를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제도다. 로지는 기사들이 급격히 빠져나간 2020년 이 제도를 중단한 지 2년 만에 다시 도입했다. 수도권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한기석 씨는 “로지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 숙제를 하지 않으면 다음날 콜을 잘 받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돈도 안 되는 콜을 잡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수수료 및 각종 비용에 대한 불만도 여전하다. 대전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이광원 씨는 “전화 콜 회사들은 20%의 수수료에 더해 프로그램비, 관리비, 보험비까지 기사들이 부담하게 한다”며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난달 동반성장위원회가 전화콜 대리운전 주선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기사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대리운전 시장은 전화 콜이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로지를 비롯해 콜마너, 아이콘 등 중개 프로그램 회사들이 전화 콜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나머지 20%는 온라인 플랫폼인 카카오모빌리티가 차지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향후 3년간 대기업의 전화 콜 대리운전시장 신규 진출과 카카오모빌리티 등의 사업 확대 자제를 권고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2016년 시장에 처음 진입하며 기존 업체들의 수수료 35%에 비해 대폭 낮은 20%의 수수료를 대리기사들에게 제시하는 등 시장 판도를 바꿨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의 개입으로 추가적인 처우 개선이 힘들어졌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수수료를 20% 밑으로 내리려 했지만 기존 업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이에 기존 중개 업체들은 “온라인 플랫폼이 수수료 인하를 포함한 홍보책으로 대리기사들을 끌어가면 영세업체들은 다 망한다”며 “플랫폼이 시장을 독점한다면 나중에는 수수료가 오히려 더 올라갈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경쟁 제한이라는 보호막을 쳐주면서 기존 중개업체들은 수수료 결정권을 틀어쥐는 등 시장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