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 추진 놀라워" "법률에 위배" 잇단 지적
"경찰 권한 커져 통제 필요…시행령과 법률 충돌 소지는 없어야"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행정안전부가 국회 입법을 건너뛰고 시행령으로 권한이 커진 경찰을 통제할 조직을 신설하고 장관의 경찰 지휘권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현행법 취지에 어긋나는 '꼼수'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19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경찰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지휘권 등을 담은 '경찰청 지휘규칙'(가칭)'을 행안부령으로 신설하는 안을 권고할 방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행안부, 해양수산부 등의 부처와 달리 다른 여러 부처에는 소속 청장 지휘규칙이 있다면서 지휘규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안부 자문위원들은 행안부 안에 경찰 통제를 위한 조직인 '경찰국'(경찰정책관)을 신설하는 안도 권고하기로 했는데, 이 같은 직제 개정 역시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최근 법무부 내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한 것처럼 국무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다.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하지만 이런 조치는 경찰의 중립·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정부조직법과 경찰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는 '치안'이 없다.

이는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검사에 관한 사무 관장'이 명시된 것과 대조적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커지면서 1991년 내무부(행안부의 전신) 소속 치안본부는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원래 내무부 장관의 사무 가운데 '치안'이 삭제됐다.

또한 '경찰법' 제정과 함께 경찰행정 심의·의결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설치됐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정부조직법에는 내무부 장관 사무에 '치안'이 있었고 그것이 경찰 사무를 뜻하는 것은 명백했는데 (개정하면서) 일부러 '치안'을 지우고, 경찰이 국가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받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권에서 분리된 중립적인 경찰을 위한 제도적 조치였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정부조직법 제34조에는 행안부 장관의 사무로 국무회의의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 정부조직과 정원, 상훈, 전자정부, 지방자치제도, 선거·국민투표의 지원,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 등 16가지가 열거됐지만 '치안'이나 '경찰'은 없다.

다만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돼 있다.

김 교수는 "법률에서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시행령으로 할 수는 없다"면서 "법률 위반 여부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행안부가 이런 논란을 피해 경찰을 통제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시행령으로 국회를 '패싱' 하려는 꼼수를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행안부에서는 "여가부 폐지도 안 되는 판국"이라며 정부조직법 개정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상황이다.

야당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 움직임에 반대 일변도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국회 전반기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가 '경찰 권력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며 중단을 촉구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 업무'는 없다.

(경찰국 신설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선택 교수는 법률의 취지에서 벗어난 시행령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위임입법의 취지를 살려야지, 그것에 정면으로 반하는 시행령을 추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법률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명령에 의한 지배를 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임입법은 국회만이 입법권을 갖는 것이 원칙이지만 법률의 위임에 의해 국회가 아닌 행정기관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시행령 제정은 국회가 입법권을 위임한 데 따른 것이며 위임 취지에 반하면 언제든 국회가 권한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정치'를 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법치주의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경찰 통제 강화 시행령 방안에 대해 "정부조직법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법률에 위배된다"면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꼼수이자 편법을 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그러나 행안부는 이런 비판에도 '각 행정기관의 장(장관)은 소속청에 대하여는 중요정책수립에 관하여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정부조직법 제7조를 경찰에 대한 행안부 통제의 근거로 내세운다.

한 자문위원은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권한에 치안이 있건 없건 외청에 대한 지휘권은 정부조직법 7조에 나와있다"면서 "기상청, 산림청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 직무에 기상, 산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찰법에 총경 이상 제청권, 국가경찰위 위원 임명 제청권 등 행안부 장관의 권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행안부 내 경찰 통제 조직 신설에 대해 "관련 법률에 명시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겠지만 하지 않아도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전보다 훨씬 커지면서 오남용 우려도 그만큼 커졌다.

그런데 통제는 예전과 다를 바 없다"면서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옛날처럼 그대로 하겠다는 건 옳지 않다"면서 경찰 통제 강화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그러나 '시행령 정치'에 대해서는 장 교수 역시 원칙적인 비판론을 표명했다.

그는 "시행령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히 해야지 '안 되니까 시행령으로 다 하겠다' 이런 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가 됐는데, 윤석열 정부도 '너희들도 했으니까…'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행령이 기존 법률과 충돌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애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국가경찰위원회가 법률에 있는데 경찰국을 만들어 국가경찰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행안부 자문위원회는 4차례 회의 끝에 21일 오후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한다.

공동 위원장인 한창섭 차관과 황정근 변호사가 브리핑할 예정이다.

자문위 권고안에는 경찰국 신설, 장관의 경찰지휘규칙 제정, 경찰 고위직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을 통한 장관 인사권 실질화,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대상으로 징계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행안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경찰제도개선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경찰 통제' 국회 패싱에 "법치주의 위반" 논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