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가뭄에 작물 상품성 떨어져, 수확 포기하고 밭 갈아엎어
불안정한 국제정세로 면세유값 배로 뛰어, "출어할 엄두 안 나"
메마른 하늘·치솟는 기름값…이중고에 깊어가는 농어민의 한숨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가뭄으로 시름 하는 농·어가에 기름값 급등이라는 버거운 짐이 또 하나 지워졌다.

농기계 엔진 소리가 잦아든 것은 물론이고, 일부 어가에서는 생업인 출어마저 포기했다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고유가 행진 속에 면세유 가격마저 치솟으면서 쨍한 하늘을 하릴없이 원망했던 농·어민들 속이 더 까맣게 타들어 간다.

◇ 모처럼 단비에도 해갈은 역부족
메마른 대지를 적신 반가운 단비에도 농가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래 가뭄이 이어진 탓에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상품성이 떨어진 탓이다.
메마른 하늘·치솟는 기름값…이중고에 깊어가는 농어민의 한숨
경남 거창군 남하면 양파 농가는 맛과 영양에 문제가 없는데도 수확을 사실상 포기했다.

알이 굵지 않아 상품 가치가 없는 양파를 수확하기 위해 노동력을 쓰는 것보다 썩도록 그대로 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인근에서 깨 농사를 짓는 농민도 참깨를 심었다가 가뭄으로 싹이 나지 않아 밭을 한 차례 갈아엎었다고 토로했다.

이 농민은 "흙이 바짝 말라서 상품성 좋은 모종을 심었는데 싹조차 나지 않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원지역에서 밭작물을 키우는 농민들도 비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강원지역 누적 강수량은 200㎜가량으로 평년(316.2㎜)의 56% 수준에 그쳤다.

농업용 저수율 또한 53.3%로 지난해 80.5%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춘천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최모(63)씨는 "올해 가격이 좋아서 저장창고에 쌓아둔 감자를 일찍 뺐는데, 봄부터 이어진 가뭄에 작물이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동해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윤모(57)씨도 "가뭄 때문에 단수(한 마지기에서 수확한 20㎏들이 양파망의 수)가 작년보다 3분의 1은 줄었다"며 "인건비도 껑충 뛰어 수중에 들어올 돈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메마른 하늘·치솟는 기름값…이중고에 깊어가는 농어민의 한숨
마늘 주산지인 충북 단양지역 농가들도 가뭄으로 농사를 망쳤다며 울상이다.

단양군 마늘생산자협의회 관계자는 "수확한 마늘 모양이 잡히지 않은데다 무게도 나가지 않아 판매할 수도 없고, 내년 씨로 남겨둘 것도 없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면세유 가격 배로 '껑충'…"출어 포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공급망이 타격받으면서 농·어가 면세유 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농업용 면세유 최근 가격은 1ℓ당 1천500원대로 지난해 700원대보다 배 넘게 올랐다.

선박용 면세 경유도 1드럼(200ℓ)에 12만원 하던 게 지금은 26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어민들은 아예 비용 부담이 큰 출어를 포기하거나 선원 급여를 챙겨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바다에 나가는 상황이다.
메마른 하늘·치솟는 기름값…이중고에 깊어가는 농어민의 한숨
대게와 홍게잡이 배가 몰린 경북 영덕군 강구항은 게 잡이 어선 200여 척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어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안 나가자니 소득이 없는 탓이다.

선장 A씨는 "그나마 대게, 홍게가 어느 정도 잡히니까 바다에 나가는 거지, 안 그러면 출어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며 "그나마 바다에 3∼4번 나갈 것을 2∼3번으로 줄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충남 보령시 등 서해안 인근 일부 어민들도 봄 어장 끝물을 맞아 출어를 속속 포기하고 있다.

보령시 수산과 관계자는 "가뭄 때는 어장 형성도 잘 안 되고, 기름값이 크게 오른데다 외국인 선원 인건비도 많이 오르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메마른 하늘·치솟는 기름값…이중고에 깊어가는 농어민의 한숨
고등어를 주로 잡는 대형선망들은 면세유 가격 상승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선망은 본선과 등선, 운반선 등 6척의 배가 선단을 이뤄 부산에서 출항해 남해안이나 제주 해역에서 어업활동을 한다.

한번 출항하면 한 선단에 6척의 배가 25일가량 조업을 하는데, 그만큼 유류 소비가 크다.

부산지역 18개 선단 중 2개 선단은 현재 출어를 포기했고, 5∼6개 선단도 먼저 출항한 선단의 조업상황을 살핀 뒤, 배를 띄우기로 했다.

대형선망 관계자는 "무턱대고 출항했다가 손해를 볼 우려가 있다"면서 "정부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자체에서도 지원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지은, 최해민, 전창해, 김용민, 정찬욱, 양지웅, 손형주, 정경재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