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투표용지.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투표용지. 뉴스1
정치공학적 측면의 세대 대결 구도는 전통적으로 2030세대와 60세 이상 세대 간 상반된 표심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3월 20대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에서 이런 정치 공식에 변화가 생겼다. 진보를 표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최대 지지세력은 2030세대가 아니라 4050세대였다. 그중에서도 40대(1973~1982년생)의 지지율은 60%를 넘어 전 연령대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변의 진보 편향성

올해 20대 대선에서 40대가 보여준 정치 색채는 강렬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40대 유권자가 이 후보를 선택한 비율은 60.5%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선택한 비율(35.4%)보다 25.1%포인트 높았다. 50대 표심(이 후보 52.4%, 윤 후보 43.9%)을 압도하는 진보 편향성이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도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기준으로 4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61.4%에 달했다.

현 40대는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정확히 20년 전 이들이 20대였던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59%의 표를 몰아줘 진보 진영의 승리에 기여했다. 또 10년 전 이들이 30대였던 2012년 18대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66.5%의 몰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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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에서 잉태된 개인주의

20년을 고수한 현 40대의 진보색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사회·정치학자들이 분석한 첫 번째 원인은 40대들이 가진 개인주의 특성이다. X세대로 불린 지금의 40대가 10~20대 학창 시절을 보낸 1990년대는 이른바 3저(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효과로 한국 경제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린 시기다.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 자연스럽게 집단보다 개인, 이념보다 실용,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친 집단적 특성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40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라며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충실하려 했던 첫 세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중시하는 개인주의 가치는 정치적으로 진보를 지지하는 형태로 표출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두 번째 원인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반작용처럼 커지고, 깊숙이 뿌리박힌 보수 정권과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장기 때 직면한 국가적 위기를 보수 정권의 실정 때문이라고 인식해 강력한 저항감을 갖게 되고 이런 사회화 과정 속에 진보 성향을 띠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이 들어도 보수화 안 될 것”

세 번째 원인은 젊은 시절 경험한 정치적 효능감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많은 40대가 20대였던 2002년 대선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며 “20, 30대 때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하며 얻은 정치 효능감이 진보 성향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정치학자들의 관심은 현 40대가 과연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는 연령 효과(age effect)의 적용을 받을까에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학과 교수는 “40대의 독특한 성장 배경을 감안할 때 가장 천천히, 가장 늦게 보수화하는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가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586 그늘에 가린 현 40대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생각할 때 보수 성향으로 돌아설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며 “세대를 대표할 정치세력도 없어 방어 차원의 진보 성향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노령층이 오히려 진보세력으로 뒤바뀐 일본처럼 우리나라 역시 현 40대가 60대가 된 이후에도 진보의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정호/장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