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임금피크제 폐지" 주장? 대법 판결문·보도자료 들여다보니…
대법원이 지난달 26일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영계에서는 대법원을 향해 "제도의 취지를 무시한 판결"이라고 불만을 표시하는 반면 개별기업 노조들은 사측에 임금피크제 관련 설명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노동계에서는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년을 늘려주지 않으면서 임금만 삭감한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연령차별금지 미치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는 내용입니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 4 제1항(사업주는 모집·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교육·훈련, 배치·전보·승진, 퇴직·해고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에 반하는 내용이라는 취지입니다. 즉 근로자에게 정년을 늘려준다거나 근로시간을 줄여주는 등의 조치도 하지않고 55세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만 깎는 것은 위법하다는 얘기입니다.

대법원 판결 소식이 알려진 직후 경영계에서는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걱정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개별기업 노조가 사측에 임금피크제 관련 미팅을 요구하고, 나아가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무효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음은 대법원이 당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일부입니다.

『대법원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구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위 조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ㆍ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함. 또한,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이러한 임금피크제 시행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로써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함』

보신 것처럼 대법원은 해당 판결문에서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라고 전제하면서도 임금피크제가 합법으로 인정받기 위한 '합리적 이유'와 관련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즉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입니다.

대법원은 판결문 곳곳에서 임금피크제가 합법으로 인정받기 위한 '합리적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전제하면서도 보도자료 말미에는 이와 같은 표현을 붙였습니다.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조치의 적정성(ex. 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됨

이 표현대로라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물론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개별기업들의 임금피크제 효력 인정 여부'도 이 사건 판결에서 제시된 '합리적인 이유'의 범위 내에서 판단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다수의 기업이 정년연장을 전제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노동계가 한번 다퉈볼만 하다고 여기는 대목이지요. 지금도 법원에서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을 불문하고 판결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판결이 주목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