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당초 예상보다 3년 이상 지연되고 있더라도, 조합원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조합원 A씨가 서울의 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패소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7월 추진위와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 1월까지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총 1억2030만원을 순차적으로 냈다.

추진위는 조합원을 모집할 당시만 해도 △2019년 10월 조합설립 인가 신청 △2020년 5월 사업계획승인 신청 △2020년 12월 아파트 건설 착공 △2023년 2월 입주 예정의 일정을 홍보했다. 그러나 2019년까지 조합설립 인가를 받겠다는 계획과 달리 아직도 인가받지 못했다. 예정된 설립 인가 신청일도 2년 이상 지난 상태다.

이에 A씨는 “추진위가 사업의 장기 지연 가능성과 토지 확보율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계약을 취소하고 납입한 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계약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추진위가 조합원 모집 공고를 냈을 당시 인허가 진행 과정에 따라 사업 계획이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렸고,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재정 확보, 토지 매입 등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가 많다는 점 등이 참작됐다.

이에 불복해 항소한 A씨는 “사업부지 확보 자금 대부분을 업무대행 수수료로 써서 사업 진행이 어렵다”며 계약 해제 주장을 추가로 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추진위가 조합설립인가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과다한 비용을 집행했다”며 “남은 자금 등으로 주택법이 요구하는 비율의 소유권 확보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가 계약금·중도금 명목으로 낸 1억2030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 해제도 인정할 수 없다며 2심의 판결을 파기했다. 계약 해제를 인정하려면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 변경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계약 유지가 어려운 상태가 돼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그 정도로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진행 과정에서 변수가 많고 당초 예상과 달리 사업 진행의 지연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며 “아울러 추진위가 지난해 3월 새로운 대표자를 선임했고, 사업성 검토 업무 계약 등을 맺는 등 사업 진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