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차명계좌라고 해도 일단 실명이 확인된 것이라면, 이 계좌로 은행이 얻은 이자소득에 세무서가 차등 법인세율 90%를 적용해 원천징수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처음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재판장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12일 기업은행에 금융실명법 제5조에서 규정한 차등과세율(90%)을 적용해 원천징수 이자소득세를 고지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판결에 불복해 서울남대문세무서장이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기업은행의 손을 들어준 원심이 2심에 이어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사건은 2018년 남대문세무서가 A씨의 기업은행 차명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에서 나온 이자소득에 90%의 원천징수세율을 적용한 소득세를 기업은행에 고지하면서 비롯됐다. 남대문세무서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선 소득세 원천징수세율을 90%로 정한다’는 금융실명법 제5조를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자 기업은행은 “A씨의 실명 확인을 하고 개설한 계좌이기 때문에 금융실명법에서 규정한 비실명자산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서며 소득세징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소송 대리를 맡았다.

5년에 걸친 소송전이 벌어진 배경엔 2017년 금융위원회가 ‘국세청이나 검찰 조사로 밝혀진 차명계좌에 예치된 자산 역시 비실명 금융자산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데 있다. 금융위의 해석이 나온 뒤 과세당국이 차명계좌를 만들어준 금융회사들에 90% 세율을 적용하는 일이 잇따랐다. 당시 기업은행 외에도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영증권 등이 똑같은 과세 문제에 휘말려 소득세징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금융회사들은 1심에선 패소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2심에선 모두 승소했다. 그러던 차에 기업은행이 대법원에서도 승소함에 따라 사실상 차명계좌를 개설해주더라도 해당 금융회사에는 차등세율을 매길 수 없다는 쪽으로 과세 기준이 세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을 맡은 1심과 2심, 대법원 재판부 모두 “금융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계좌로 거래한 사람은 원칙적으로 계좌 명의자이기 때문에 해당 계좌의 금융자산을 금융실명법 제5조에서 규정하는 비실명자산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이 사건은 원천징수 법인세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세율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