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조사위 최근 故김재영 열사 확인,친동생 42년만에 5·18 묘지 참배
"다음 생엔 내아들로 태어나" 5·18행불자 여동생 눈물의 첫참배
"다음 생에는 내 아들로 태어나.

못 해준 것 다 해줄게."
42년간 이름을 찾지 못하고 무명 열사로 묻혀있던 고(故) 김재영 열사의 묘 앞에서 그의 여동생 김모(52) 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립 5·18 민주묘지에 묻혀있던 무명 열사의 유해 가운데 하나가 당시 행방불명된 김 열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21일 여동생 김씨를 그의 묘소로 안내했다.

이름 대신 무명 열사라고 쓰인 묘비명과 영정사진 대신 무궁화 사진이 놓인 쓸쓸했던 묘가 42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맞았다.

김씨는 묘 앞에 소박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담담한 모습으로 참배한 것도 잠시.
얼굴조차 알지 못한 오빠였지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홀로 지냈을 오빠를 생각하니 울컥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사실 김 열사는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마치 고아와 다름없이 홀로 자랐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당시 갓난아기였던 여동생만 데리고 서울로 훌쩍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아들을 버리고 온 죄책감 때문인지 형제가 있다거나 친가 쪽 친척들이 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며 "뒤늦게 오빠가 있었고 5·18 때 숨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 생엔 내아들로 태어나" 5·18행불자 여동생 눈물의 첫참배
그는 "그동안 나만 잘살아온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며 수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엄마를 잘못 만나서 (얼마나 고생했겠냐). 그래도 엄마 많이 미워하지 마"라고 울먹였다.

어머니가 떠나고 남겨진 형제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김 열사의 어린 시절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5월 항쟁 당시 만 17살로 구두닦이를 하던 그는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했을 때 총탄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목격자는 군인들이 그의 시신을 군 차량에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이후 김 열사의 시신은 망월 묘역에 묻혔지만 끝내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망월 묘역에 묻히게 된 경위와 과정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삼촌이 행방불명 신고를 하고 2001년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직계 가족이 아닌 탓에 신원 확인에 실패했다.

최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무명 열사 5기의 유해를 채취해 다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렸을 때 헤어진 동생 김씨를 찾아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생엔 내아들로 태어나" 5·18행불자 여동생 눈물의 첫참배
조사위는 지금까지 김 열사를 포함해 모두 3기의 무명 열사 신원을 확인했다.

김씨는 "이제라도 어머니의 한이 좀 풀릴 것 같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와 참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