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 진행형"…눈물의 영결식 [종합]
사진=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사진=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강수연 선배님과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의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강수연은 한국 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 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11일 엄수된 추도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원조 월드스타'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려온 고 강수연이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영면에 들었다.

이날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유지태가 사회를 맡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임권택 감독, 배우 설경구, 문소리, 연상호 감독이 추도사를 했다.

먼저 유지태는 "전혀 실감이 안 나고 있다"며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좋겠다"고 황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강수연 선배님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가족들과 영화계 선후배들이 함께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동호 이사장은 "강수연을 사랑하는 모든 분이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으로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한다. 수연씨,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는가.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수연씨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시간 머물면서 영화제를 빛내주는 별이었다"고 떠올렸다.

고 강수연에 대해 "21살인 젊은 나이에 '월드 스타'가 됐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명예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잘 버티기 위해 명예롭고 스타답게 견디며 살아왔다. 지혜롭고도 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범접할 수 없는 미모와 위엄을 갖춰 남자 못지않은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이끌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도약하려는 강수연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믿었다.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 응급실에서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비록 강수연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현장의 별로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다.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배우 강수연 영결식 /사진=영화진흥위원회
배우 강수연 영결식 /사진=영화진흥위원회
설경구는 "한 달 전 촬영이 끝나면 보자고, 할 얘기가 많다고 했는데 봐야 하는 날인데 선배님의 추도사를 하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다.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잔인하다"며 추도사를 시작했다.

그는 강수연과의 첫 만남을 1998년 영화 '송어' 촬영장이라고 기억했다. 이어 "경험이 없던 저를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치며 이끌어주셨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예산이 작은 영화라 열악했고, 먹는 것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며 회식을 시켜주시고 주기적으로 모두를 챙겨주셨던 선배님이다. 직접 알려주고 가르쳐 주셨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는 또 "저는 선배님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인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 선배님은 제 영원한 사수였다. 모든 배우에게 무한 애정과 사랑을 준 걸로 알고 있다. 배우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서 우리들의 진정한 스타였다. 새까만 후배부터 한참 위의 선배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인 같은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소탈했고 친근했고 섬세했고 영화인으로 자긍심이 충만했다. 어디서나 당당했다.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우셨던 선배님. 아직 할 일이 많고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며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준 사랑과 염려, 배려와 헌신, 영원히 잊지 않겠다. 사부와 함께여서 행복하고 사랑했다. 더 보고 싶다. 당신의 영원한 조수 설경구"라고 슬픔을 드러냈다.

강수연이 생전 아낀 후배인 것으로 알려진 문소리는 추도사를 시작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언니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는데 친구가 '청춘 스케치' LP를 방에서 들고나왔다. 한참을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라일락 꽃향기가 나는 길에서 하늘을 보며 언니가 가는 길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영화의 세계라는 게 땅에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잊지 않겠다. 여기서는 같은 작품 못 했지만, 나중에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라고 덧붙였다.
고 강수연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배우 설경구, 문소리, 연상호 감독 /사진=영화진흥위원회 유튜브
고 강수연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배우 설경구, 문소리, 연상호 감독 /사진=영화진흥위원회 유튜브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무명 시절 만난 강수연과의 인연을 전하며 추모했다.

그는 "2011년 제가 만든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 칸 영화제에 갔다. 운 좋게도 몇 개의 상을 받았다. 시상식 후 프로듀서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칸 영화제의 관계자가 저를 불렀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만났는데 관계자는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모습을 본 강수연이 영화제 관계자의 이야기를 연상호 감독에게 직접 통역해 줬다고. 그는 "지금 관계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째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 스타가 해외 관계자 앞에서 쩔쩔매는 젊은 독립 애니 감독을 위해 통역을 자처할 수 있는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수연 선배는 연기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영화제 일을 하며 한국 영화가 세계에 알려지기 위해 자기 일처럼 나섰다. '자기 일처럼'을 정정하겠다. 마치 자신이 한국 영화인 것처럼"이라며 "앞서 의문의 답은 '강수연 그 자체가 한국 영화다'라는 것"이라고 했다.

강수연과 함께한 '정이'에 대해서 연 감독은 "몇 년 전 한국에서 잘 시도되지 않았던 SF 장르의 영화를 기획했는데 새로운 시도라 두려움이 컸고, 어떤 배우와 해야 하는가 고민 중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강수연 선배님이었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던 강수연 선배님과 이 영화를 함께 하고 싶었다.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 시나리오를 전해드리고 몇 번의 만남 끝에 '잘해 보자'고 하셨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았다. 강수연이란 거대한 배우와 제가 각별한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했던 새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흐느꼈다.

연 감독은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진행형"이라며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선배님, 저는 선배님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선배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새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하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선배님의 든든한 빽이 되어 드리겠다"고 추도사를 끝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월드 스타'로 불렸던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사흘째 의식 불명 상태로 입원 치료를 받다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용인공원에 안치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