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신규 직원에 대해 수습과 시용, 채용내정, 인턴 등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개념들은 엄연히 달라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혼용이 흔하다 보니 법원도 용어보다는 실제로 그 직원의 근로 실질을 들여다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법원 마저도 수습과 시용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정식 채용 전에 업무 평가를 받고 있는 시용직 근로자는 그 회사의 정식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도, 산재보험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14일 동춘여객자동차 주식회사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요양보험급여 결정승인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상고를 기각한 후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시용 직원도 산재 인정되는 '근로자'A는 2015년 8월 중순, 지인의 소개로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 운전면허증, 경력증명서 등을 제출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마친 A는 운행 연습기간을 가졌다. 이 회사는 서류심사에 통과한 지원자가 운행 테스트를 받기 전 통상 1개월 정도 시내버스 노선을 숙지하고 운행 연습하는 기간을 거치도록 하고 있었다. 회사와의 약정에 따라 A는 본기사(각 차량마다 정해진 고정기사)의 지시를 받으며 약 2주 동안 80개가 넘는 노선에 대해 숙지했다. 이후 약 3주 동안 본기사를 태우고 승객이 탑승한 상태에서 노선을 따라 운행 연습을 했다.그러던 중 A는 9월 어느 날 오전 운행 중 사고를 당해 골절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요양승인) 처분을 내리자, 회사 측은 "A는 우리 회사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결국 회사와 A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는지, 즉 A가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회사는 A가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임금을 지급받지 않은 점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와 회사 사이에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가 노선 숙지만 하고 직접 운전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교육 훈련이거나 적어도 피교육자이자 근로자라는 지위를 겸한 채 이뤄진 것"이라며 "교육 및 훈련이 종속적 관계에서 이뤄진 이상, 시용기간 중에 원고를 위해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했다. A의 근무 형태가 법원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시용기간 동안 A는 본기사로부터 ‘내일은 몇 번 버스를 타고 몇 시까지 나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05:30경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본기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차량을 타고 노선 숙지와 운행 연습을 했다. 또 회사 지정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그날의 노선 운행을 마치고 퇴근했다.월급을 주지 않은 점, 근로계약서를 미작성 한 점에 대해서도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자신의 의사대로 정할 여지가 큰 사항"이라며 "이런 사정만을 이유로 시용 근로계약의 성립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본 채용 前 시용도 엄연한 근로계약실무에서는 시용이란 단어가 다소 생소해 수습이란 단어와 섞어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 두 개념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르다.수습은 이미 확정적 근로계약이 체결된, 즉 정식 직원이 됐지만 작업 능력이나 사업장 적응 능력을 기르는 기간을 말한다. 따라서 수습직원은 일반 정규직 근로자와 고용안정성 부분에서는 거의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받는다. 반면 시용은 대법원 판결에서도 언급됐듯 본 채용 전에 일정기간 시험해 보는 기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용 근로자는 정직원은 아니며, 평가 결과에 따라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있다. 대법원도 시용을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근로자의 직업적 능력, 자질, 인품, 성실성 등 업무적격성을 관찰,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일정기간 시험적으로 고용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2021다218083).다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시용기간 중이어도 사용자의 해약권이 유보돼 있다는 사정만 다를 뿐 그 기간 중에 확정적인 근로관계는 존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즉 업무 평가 결과에 따라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뿐, 이미 근로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서는 근로계약은 맞다는 설명이다. ◆시용도 함부로 해고하면 '부당해고' 대법원은 다른 판결에서 "시용근로자의 근로가 업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이나 훈련의 성격을 겸하고 있는 경우라고 해도,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가 제공된 이상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한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시용 기간에는 일을 당연히 배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그런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지시에 따른 근로제공이기 때문에, 엄연히 근로자라는 게 대법원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시용 근로의 계약기간을 무제한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시용 근로 계약기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법원 판결이 없다. 다만 근로계약에 시용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정식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은 있다. 시용계약은 불완전한 계약형태로 근로자의 신분을 오랜 기간 동안 불확실한 상태로 두는 것이기 때문에, 민법 제103조에 규정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즉 적격성 판단에 필요한 기간을 초과한다고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경우에는 무효가 될 수 있다. 또 아무리 시용이라고 해도 합리적 근거 없이 해고해서는 안된다. 물론 해약권이 유보돼 있기 때문에 일반 정직원에 대한 해고보다는 쉽다. 그렇다 하더라도 직무적격성 판단에 따른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없거나 사회통념상 상당하지 않다면 자의적인 부당해고가 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씨티은행이 근무성적 평가표만을 근거로 직원의 본 채용을 거부한 사안에서 "평가표만으론 업무수행에 어떤 차질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한 판결이 있는 반면, 버스회사 시용 근로자가 시용기간 중 앞차를 충돌해 승객들이 부상을 당하고 앞차가 파손된 경우 운전 부적격을 이유로 해고한 게 정당하다고 판시한 판결도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배우자를 사내 이사 등 임원으로 임명했다고 하더라도, 배우자의 근로 실질이 근로계약 관계라면 근로자이므로 함부로 해고할 경우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지난달 31일 IT회사 대표 A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중노위와 B 측의 손을 들어줬다.◆가장 믿을 수 있는 배우자 채용했지만…그 끝은 부당해고 IT 회사 대표이사 A는 2009년에 B와 혼인했고, B는 2011년 이 회사에 개발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B는 IT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어 장기간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후 회사 부설 연구소장 등으로 근무했으며, 2017년에는 사내이사,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감사로 등기돼 일해왔다.그러던 중 두 사람이 가정불화를 겪으며 갈등이 심해지자, A는 2018년 11월부터 B에게 회사에 출근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A는 출근 하겠다는 B에게 하루는 "내일부로 연구원으로 강등하며, 기존 인사 담당 업무에 대해 시말서를 제출하라. 징계위원회 결과 3개월 감봉과 대기명령을 명한다"는 카카오톡을 발송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후 A는 회사 등록시스템에서 B의 지문을 지우면서 출근을 막기도 했다. 결국 두사람은 이듬해 이혼에 이르렀다.결국 B는 A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임금 등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중앙노동위원회가 "B는 근로자인데도 해고 서면 통지를 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B의 손을 들어주자, A는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이 사건에서는 B가 A의 근로자인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 됐다.재판에서 A는 "B는 회사 공동경영자로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으므로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며 임원에 해당하므로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하지만 법원은 B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가 전문적인 능력으로 회사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만한 역량은 없었고, 따라서 대표이사이자 배우자인 A의 강한 신임을 바탕으로 개별적·구체적인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B는 원고 회사의 경영성과나 참가인의 업무성적과 무관하게 고정 월급을 받았을 뿐, 이익을 배당받거나 손실을 부담한 바 없다"며 "회사 경영위험을 부담하지는 않은 B는 근로 자체의 대가로 보수를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그 근거로 △B가 임원이 아닌 개발팀 과장으로 입사했고 이후 이사가 됐지만 특별히 근로조건이나 업무 내용이 달라진 것은 없었던 점 △이사로 등기됐지만 경영성과에 따른 이익 분배 약정, 보수 약정 등을 별도로 한 바 없는 점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거나 배당을 받은 바 없고, 이사로서 이사회에 참가해 업무 집행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실질적 감사 업무를 했다고 볼 수 없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둘 사이가 격앙돼 주고받은 카톡도 결정적 증거가 됐다. 출근하지 말라던 A는 출근하겠다는 B와 서로 조롱 조의 카톡을 주고받던 도중 "만약 회사에 나온다면 해고하겠다"라는 취지로 보낸 것이다.법원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B는 A에게 자신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전제로 퇴직금을 받기 위한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거나 근로제공 의사를 밝혔지만, 되레 A는 B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반박한 적이 없고, 오히려 징계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라고 꼬집었다. 자신의 근로자에게 행사하는 징계권을 운운한 것은 결국 자신의 근로자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A 측은 B가 근무 시간이나 장소에 구속받지 않았고, 업무용 차량을 제공한 점 등을 들어 B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일축했다.재판부는 "B가 다른 근로자에 비해 엄격한 근태관리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표이사이자 1인 주주인 A의 배우자라 그의 허락으로 근로 시간과 장소 선택에 자율성이 인정되는 근무 형태를 취한 것이지 근로자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업무용 차량 제공도 둘이 부부 사이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근로자성 판단에 유의미한 요소로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세금 등을 아끼기 위해서라든지 여러 사정을 이유로 가족을 불러들여 경영을 하는 대표들이 있지만, 근로관계가 형성되면 일반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임금체불 등이 성립될 수 있다"며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쉽게 계약 관계를 변경하거나 종료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보유한 아파트 10만2000여가구의 시세는 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득가액(15조9432억원)과 비교해 약 3배 오른 수준이다.SH공사는 29일 홈페이지를 통해 보유 중인 아파트 10만1998가구의 자산 내역을 공개했다. 공기업 최초로 자산내역 전면 공개에 나선 가운데 지난 3월 1차로 장기전세주택 2만8000가구를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2차로 아파트(장기전세주택 포함) 자산 내역도 공개했다. SH공사가 보유한 아파트 전체 취득가액은 작년 말 기준 토지 7조177억원, 건물 8조9255억원으로 총 15조9432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구당 평균 1억6000만원이다. 전체 시세(작년 8월 기준)는 49조4912억원(가구당 평균 4억9000만원)으로 추정됐다. 취득가액과 비교하면 3.1배 늘었다. 장부가액은 12조8918억원(가구당 평균 1억3000만원)으로 시세의 4분의 1수준이다. 공시가격(작년 6월1일 기준)은 34조7428억원(가구당 평균 3억4000만원)으로 시세의 약 7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아파트가 3만5772가구로 전체 35%를 차지했다. 취득가액은 7조2771억원(가구당 평균 2억원), 시세는 24조6788억원(가구당 평균 6억9000만원)이다. 공시가격은 17조3245억원이다. 이 중 강남 세곡2지구의 경우 취득가액은 5404억원, 장부가액 4686억원, 공시가격 1조2429억원으로 나타났다.SH공사는 상반기 중으로 다세대, 다가구, 주거용 오피스텔 등의 자산 내용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안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