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대선 후 첫 간담회에서 ‘근로시간·최저임금 문제’를 향후 노정(勞政) 관계의 핵심 사안으로 언급했다. 차기 정부가 추진키로 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과 차등 적용, 근로시간 유연화 등에 대해 윤 당선인 앞에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이다. 당장 이르면 올 6월 결정되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윤 당선인의 취임 이후 노정 관계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한국노총 상임 지도부 및 회원조합 대표자와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12월 만남 이후 4개월 만이다. 윤 당선인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평가하지 않는 국가, 사회, 기업은 더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노동자가 당당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근로시간과 최저임금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 태도가 향후 5년간 노정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에서 선택적 근로시간 확대, 직무급제 도입 등 근로시간 유연화를 공약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4일 성명에서 선택적 근로시간 확대에 대해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듯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동자는 실제 몇 명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등 윤 당선인의 노동 공약을 비판했고, 이번에 재차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노총이 최저임금 문제를 거론하면서 향후 최저임금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올 8월 최저임금 고시 법정시한까지 인상률을 놓고 노사정 간 치열한 샅바 싸움이 예상되고, 차등적용제 논의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에서 최저임금의 지역·업종별 차등화를 공약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5일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루즈-루즈(lose-lose)게임’이 된다”며 인상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충재 공무원·교원위원회 위원장은 “공무원·교원노조 타임오프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조 전임자에게 근로시간 면제를 제공하는 타임오프제는 윤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다. 관련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3개월 넘게 환노위 전체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 요구안에 대해 윤 당선인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이정식 후보자를 지명한 만큼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겠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간담회는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를 방문해 노동정책 요구안을 전달하고 윤 당선인의 방문을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한국노총은 대선 직전인 지난 2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이후 한국노총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한국노총 출신인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고용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