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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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아픈 반려견을 내세워 거액의 후원금을 챙겨 달아난 이른바 ‘경태 사기 사건’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피해자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 후원 사기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수사가 공회전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의 미진한 수사 속도를 비판하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CJ대한통운 마스코트 택배견 ‘경태’와 유튜버로 활동한 택배기사 김모씨는 지난해 SNS에 계좌를 공개하고 “사고로 택배 일을 못해 반려견 ‘경태’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해 후원금을 받아 챙긴 뒤 잠적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최근 사기와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김씨를 입건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 규모와 김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피해 금액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게시판과 SNS 등을 이용한 모금 사기와 후원금 횡령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1월 전남 여수에서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며 후원금을 모은 정 모씨가 돌연 SNS 계정을 닫고 약 1억원 든 후원금 통장을 들고 도주했다. 2019년엔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불우한 가정사를 꾸며내 회원들에게 약 42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아낸 A씨가 모금 직후 잠적했다.

온라인 후원 관련 범죄가 반복되는 것은 사건 다수가 소액 피해 사건인 탓에 경찰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관련 법률에 헛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작정하고 거짓 사연을 꾸며 돈을 받고 도주한 사건과 달리, 진실로 후원금을 모은뒤 멋대로 유용한 경우엔 처벌 법률을 적용하기 애매하다는 설명이다.

반려묘 유튜버 채널 ‘갑수 목장’을 운영하는 박 모씨는 유튜브의 슈퍼챗(실시간 후원금 모금)을 통해 유기동물의 입양‧처우 개선을 내세워 7개월 간 1700만원 가량을 받아 사기‧기부금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됐으나 지난 2월 무혐의 처분됐다. 기부금법으로는 명확한 목적을 밝히고 공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금품을 모집해야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후원자들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돈을 줬다면 증여가 된다. 권대근 법무법인 지유 변호사는 “개인과 단체가 기부금품 모집‧사용 계획 등을 사전 신고하지 않고 1000만원 이상을 모집하면 원칙적 처벌대상”이라면서도 “실제 사건에선 후원금이 기부금에 요건에 해당되지 않고 개별 후원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 기소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온라인 플랫폼의 후원 유도 콘텐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소액사기 사건을 담당한 유영규 법무법인 이현 변호사는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익명성에 기대 온라인으로 금품을 손쉽게 가로챌 수 있다”며 “현행 기부금품법만으로는 온라인 후원금 사기를 단속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