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이 에너지 소비의 56% 차지…석탄가격 안정이 곧 에너지 가격 안정"
풍력·태양광 발전도 강조하나 '단기 공백' 채우긴 어려워
원유·가스가격 폭등에 중국, 석탄 생산 증대 나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원유와 천연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각국이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중국이 자국산 석탄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그간 중국은 탄소 배출 저감 차원에서 석탄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는데 국제적 불확실성 고조 속에서 장기적 환경 목표보다는 당면한 경제 안보 지키기 쪽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조정하는 모습이다.

8일 관영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경제계획 총괄 부처인 국가발전계혁위원회(발개위) 롄웨이량 부주임(차관급)은 전날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의 부대 행사로 열린 정책 기자회견에서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과 관련해 "중국은 원유, 천연가스의 외부 도입 비율이 비교적 높아 세계 에너지 시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수입 비용이 객관적으로 상승하겠지만 전반적으로 그 영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롄 부주임은 석탄 등 에너지의 중국 내 생산 증대와 국가 차원의 비축 확대를 통해 에너지 수급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중국이 석탄, 원유, 천연가스 생산을 늘려나가는 한편 사막과 황무지 지역에 중점 풍력·태양광 복합 발전 단지 건설을 늘리는 등 청정에너지 발전을 위해서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에너지 수급 불안 사태에 대비해 석탄과 천연가스 비축량을 각각 2억t, 50억㎥로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롄 부주임은 중국이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전력과 천연가스 (대민) 공급 제한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각종 상황에서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보장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전국 31개 성급 행정구역 중 최소 20곳에서 산업용 전기를 중심으로 제한 송전이 이어져 제조업 생산에 큰 차질이 빚는 등 전력 대란을 겪었는데 올해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력 대란은 세계적 원자재난 속에서 석탄 공급 부족이 빚어진 데다 중국 당국의 경직된 '운동식' 탄소 배출 저감 정책이 더해진 측면 등에서 비롯됐다.

중국 전체 전력 중 약 60%가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은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풍력·태양광 발전 등 청정에너지 공급 확대 의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원유와 천연가스 등 중국이 대규모로 수입하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석탄이 가장 유연한 대처 카드라는 점에서 중국의 올해 에너지 증산 계획은 석탄 생산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공격적 투자에도 2021년 중국의 전체 전력 생산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 미만이다.

오랫동안 중국은 값싸고 풍부한 석탄 자원에 크게 의존해왔다.

후쭈차이 발개위 부주임도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수급 안정의 핵심이 석탄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석탄은 전체 에너지 소비의 56%를 차지한다"며 "석탄 가격 안정이 곧 전기 가격 안정이고, 전체 에너지 가격의 총체적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의 이번 방침은 전력 대란 사태 이후 나타난 석탄 생산 및 소비 억제를 완화하는 기조가 한동안 계속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시 주석이 2020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국 탄소 배출량이 2030년까지 정점을 찍고 내려가 2060년에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중국은 저탄소 녹색 성장을 최우선 국정 기조로 삼았고 이후 중국의 석탄 생산량은 점진적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하지만 전력 대란으로 인한 민심 악화와 산업 충격에 놀란 중국 당국은 대대적 석탄 증산 명령을 내렸고 작년 10월부터는 다시 석탄 생산이 급증하는 추세다.

그 결과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작년 석탄 생산량은 40억7천만t으로 전년 대비 4.7%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은 석탄 자원은 풍부한 편이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는 자체 생산량만으로는 거대한 수요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중국석유화학공업연합회에 따르면 중국은 작년 5억1천만t의 원유를 수입해 원유 해외 의존도가 72%에 달했다.

인허증권에 따르면 중국은 작년 1천687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해 해외 의존도가 44.3%였다.

중국의 주요 가스 수입 대상국은 호주, 미국, 타지키스탄, 러시아 등이다.

중국의 연간 천연가스 수입 규모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러시아 가스 수입 규모(약 1천550억㎥)를 웃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중국 역시 원유와 천연가스 도입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지난 5일 "탄소 배출을 낮추는 동시에 에너지 안보와 산업 공급망의 안전을 확보해 민중의 정상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 이는 중국 지도부가 현재 에너지 수급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의 여파 속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이미 중국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1∼2월 중국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량은 8천514만t, 1천986만t으로 각각 작년 동기보다 4.9%, 3.8% 감소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시대를 공식적으로 열 가을 20차 당대회 개최를 앞두고 중국은 올해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제 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이에 작년 전력 대란 사태 직전까지 강한 드라이브가 걸렸던 저탄소 정책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5일 전인대 개막식에서 한 올해 업무보고에서 예년과 달리 연간 에너지 소비 감축 목표를 따로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경제 성장 쪽에 강한 힘을 실어줬다.

중국의 에너지 수급 안정은 경제 상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석탄 생산·사용량이 늘어나면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대거 유입되는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