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은 유죄 근거로 '지적 권한' 내세워…2심 "명문 규정 없다"
이민걸·이규진 항소심, '양승태 공모' 인정 1심 뒤집어
이민걸·이규진 두 전직 고위 법관이 항소심에서도 이른바 '사법농단' 관련 혐의 일부에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모는 1심과 달리 모두 인정되지 않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최성보 정현미 부장판사)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벌금 1천500만원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1심에서는 이민걸 전 실장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는데 나란히 형량이 줄었다.

이민걸 전 실장은 사실상 1심과 유무죄 판단이 동일하게 나왔다.

사법행정에 부정적인 판사들의 모임을 와해시키려 하고, 특정 사건의 담당 재판부 심증을 알아내라고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 등이다.

이 사건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것은 1심에서 이규진 전 상임위원만 유죄를 인정받았던 다수의 '재판 개입' 관련 혐의들이다.

이는 다른 혐의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일선의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재판개입 행위는 ▲ 한정위헌 취지 위헌심판제청 결정을 직권 취소하도록 개입 ▲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 1·2심 개입 및 상고심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지시 ▲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 1심(전주지법·광주지법) 개입 등이다.

종전까지 '사법 농단' 관련 혐의로 기소됐던 이들이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특정 사건 재판사무의 핵심 영역을 지적할 권한, 즉 '지적 권한'이 있으며, 따라서 직권남용도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 경우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와 공모해야만 유죄가 인정된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일부 재판 개입 혐의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또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헌법·법원조직법·구 법원사무기구규칙 등 관련 법령을 모두 살펴봐도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의 지적권한을 규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며 "지적권한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에 속한다고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의 공모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재판 개입은 아예 무죄로 뒤집혔고,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가 나온 판결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 전 차장에 대한 재판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재판 개입 내지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의 공범으로 지목됐으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