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원장 "선교사 덕에 장애 고쳐…의료봉사 가는 이유죠"
“저는 어린 시절 걷지 못하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의료봉사를 온 외국인 선교사를 만나 기적처럼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분이 제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새 삶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인천 부평구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철성 박정의학과의원 원장(62·사진). 겉보기엔 평범한 동네의사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에겐 한 가지 특이한 직함이 있다. 의료인의 의료봉사단체인 ‘로즈클럽인터내셔널’의 사무총장 직함이다. 국내를 비롯해 필리핀과 네팔 등지에서 의료봉사를 펼쳐온 지 27년째. 그의 손을 거쳐 간 해외 오지의 환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

지난 14일 박 원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행정안전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그가 변변한 인프라 하나 없는 오지로 몇 년씩 의료봉사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기자와 만난 박 원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의료봉사로 큰 도움을 받은 만큼 그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박 원장은 “어릴 적 만난 스탠리 토플 선교사가 저를 봉사로 이끌게 해준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앓았다. 학교에 입학한 뒤 장애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여수 애양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토플 선교사를 만나 하반신 수술을 받게 되면서 새 삶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의사의 꿈을 갖게 됐다. 1994년 의사 개업을 하면서 국내에서 봉사 활동도 시작했다.

그가 ‘해외 봉사’를 마음먹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무렵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방문했던 애양병원에서 토플 선교사가 여전히 해외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너무나도 고마운 분이라 소식이 궁금했는데 케냐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됐으니 더욱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간 거죠. 당시 연세가 70세를 넘겨 은퇴하신 줄 알았던 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결심했죠.”

2003년 박 원장은 병원을 접고 혼자 필리핀으로 떠났다. 1년간 현지에서 체류하며 의료 시설이 열악한 섬 지역과 도시 빈민층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펼쳤다. 귀국한 뒤 의료봉사를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로즈클럽인터내셔널(당시 장미회)에 가입했고, 2007년 가족과 함께 네팔로 다시 의료봉사를 떠났다. 2009년에는 네팔 카트만두에 설립된 한-네팔친선병원의 의료팀장 역할을 무보수로 4년간 맡았다.

최근 코로나19로 해외 봉사가 크게 막혔지만 박 원장은 더욱 바빠졌다. 네팔 지역 코로나19 물자 지원을 위해서다. 박 원장은 “과거 한국이 수많은 해외 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이제는 우리가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