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제 도입 주장도…"안전관리자 책임·처벌, 정부 관리감독 강화 필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로 건설 현장에 대한 안전 우려가 커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국내 건설안전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현행 법규와 건축 관련 지침만 잘 지켰더라도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철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러다 또 무너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높이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국내 건설·안전 관련 법규와 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돼 있어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 힘든 구조인데 실제 건설 현장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후진국형 인재가 발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건설 현장에서 공정에 따라 공법대로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는 감리의 역할과 책임에도 한계가 있어 감리 제도를 내실 있게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차제에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불법 하도급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러다 또 무너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높이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건설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필요성을 거론했다.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한국콘크리트학회 회장)는 16일 연합뉴스에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강도 문제와 관련, "콘크리트 시공의 경우 일반인에게는 레미콘만 갖다 부으면 건물이 뚝딱 완성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콘크리트의 품질도 굉장히 세밀하게 체크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콘크리트는 시공 중에는 불안정한 상태여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하고 세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데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면서 "또 시공 중 붕괴 방지를 위한 구조설계를 현장에 맞게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는 곳이 없는 실정이고, 감리자들도 콘크리트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흡한 현장관리는 원청이 하도급 업체에 관리 책임을 미루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대형 건설사들이 자기가 맡은 현장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안전관리를 다 해야 하는데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하청에 재하청까지 주니 공사비가 낮아지면서 안전관리에는 소홀해지게 된다"며 "하청업체 관리를 대충하는 것은 물론 책임감리도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러다 또 무너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높이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실제로 공사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은 빠져나가고 하청 업체가 책임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원청의 관리·감독 책임을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달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내실 있게 운영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도 조속히 제정하는 등 관련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가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이 법의 취지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안전 중심의 경영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원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연구소장(전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안전 규정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거나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와 근로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장은 "안전사고로 인한 손실의 대가가 안전사고 예방 비용보다 크다면 기업들이 안전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싱가포르 등 안전관리 선진국에서는 이미 안전사고에 대해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안전을 소홀히 하면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러다 또 무너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높이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현장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공기(공사기간) 단축'을 최고로 여기는 구조가 굳어져 있어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

공기를 단축하면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건설사로서는 구조적으로 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에 상당수 건설사는 현장 책임자 평가에서 공기 관리를 중요한 요소로 반영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별도 지시가 없더라도 상시로 공기 단축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소장은 "공기 단축을 성과로 여기는 관행과 경영자의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사고 위험을 키우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면서 '단가 후려치기'가 만연한 구조적 문제와 최저가 낙찰제의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최용화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안전관리기술인회장(전 경기대 건축안전공학과 교수)은 "아파트를 지으려면 40여개 이상의 협력업체를 선정해야 하는데 양질의 공사를 위해서는 공사비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저가 낙찰방식으로 비용 절감에만 집중하지 말고 안전의 관점에서 최소한의 이윤을 보장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러다 또 무너진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높이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교육과 인력 관리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전국에 초고층 건축물이 속속 들어서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공법을 도입하는 공사가 많아지고 있는데 대형 건설사들이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하청·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막상 현장 작업은 최신 공법에 익숙하지 않은 인부들이 맡게 돼 문제라는 것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국내 건축기사 등 기술자들은 자격 유지를 위한 보수교육 등 관리를 받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제3국 인력의 경우 이러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교육이 안 된 인력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들 현장 인력에 대한 교육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관리·감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 교수는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전에도 인근 주민들이 수백 건의 민원을 넣었다는데 구청이나 감독기관에서는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의례적으로 넘겼다"면서 "감독기관의 철저한 감시가 있었더라면 위험 징후를 포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