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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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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는 솔로.’

가수 제니의 노래 ‘솔로(SOLO)’ 가사엔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홀로인 게 좋아. 난 나다워야 하니까. 밝게 빛나고 싶어. 빛이 나는 솔로.’ 최근 명품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럭비남’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럭비남은 ‘럭셔리 제품을 선호하는 비혼·비출산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1982~1991년생을 주축으로 한 럭비남은 새로운 소비권력이다. 지난해 주요 백화점에서 30대 남성의 명품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30~40%로 단연 돋보인다. 한 명품 플랫폼 업체는 올해 명품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남성·키즈·리빙’ 세 가지를 꼽기도 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넉넉한 연봉을 받는 럭비남은 자기 만족을 위해 지갑 여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결혼 생각 없고, 집값 급등에 내 집 마련의 꿈도 저만치 미뤄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외 활동이 축소된 것도 영향을 줬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사고 싶은 걸 사고 즐긴다. 명품를 구매하는 이유 중 하나에 타인의 시선도 있다.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SUITS)’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입은 옷을 보고 반응하지.”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로 행복을 얻음)’부터 ‘플렉스(부나 귀중품을 과시)’까지 씀씀이 규모도 각양각색이다. 명품 지갑, 벨트로 시작해 백팩, 신발, 정장은 물론 과거 예물시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고가의 롤렉스 시계도 럭비남의 ‘잇템’이다.

이들 덕에 중고명품업계도 덩달아 호황이다. 리셀(한정판 등 희소성 있는 제품을 웃돈을 받고 되파는 것) 시장 성장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럭비남에게 ‘득템’은 너무나도 짜릿한 말이다. 명품업계에선 이들을 겨냥해 한정판과 ‘베르사체×펜디’ ‘메종 마르지엘라×리복’ 등 브랜드 간 협업 제품을 내놓는다.

럭비남의 소비는 명품에 그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꾸고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며 분위기 좋은 바에서 위스키를 음미하는 등 럭셔리 라이프를 향유한다. 이들 행위는 모두 ‘나’로 귀결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최근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럭비남 현상에 대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더 잘게 쪼개지고 파편화된 나노 사회에서, 개인은 집단에서 구하던 정체성을 이제 스스로 구해야 한다. 모두 제 각자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찾는 기나긴 오디세이가 시작됐다.” ‘나다움’의 증거가 되는 물건으로 명품을 택한 건 그만큼 ‘자기애(愛)’가 강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럭비남의 등장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강남에서 화려한 소비생활을 하는 20대 청년을 ‘오렌지족’이라고 불렀다. 이후 ‘보보스족’ ‘메트로섹슈얼족’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럭비남이 이들과 다른 점은 ‘행복하기 위해 불확실한 미래보단 오늘이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가치관이 좀 더 강하다는 점일 것이다.

럭비남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허영심에 매몰된 한심한 젊은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럭비남은 이렇게 말한다. “그게 어때서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는 겁니다. 나를 위한 소비에 낭비란 없습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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