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사망자의 27%가 암으로 사망했다.
퓨리메디를 이끄는 사람들
퓨리메디를 이끄는 사람들
현재 암을 진단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조직 생검이다.

조직을 채집하기 위해 내시경이나 주삿바늘 등의 도구를 이용해 목표 조직에 침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 방법은 의사는 물론 환자에게도 부담이다.

종양 조직이라고 해도 채집 위치에 따라 생물학적 특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조직 생검을 하더라도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진단 분야에서는 액체 생검 방식이 조직 생검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액체 생검은 혈액, 소변, 척수액 등을 이용해 암 또는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침습적인 진단을 간단히 채혈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동용 퓨리메디 대표(25)는 액체 생검 방식 중 혈액을 이용한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혈액 0.2㎖로 17종 암을 94% 정확도로 진단' 유니스트 스타트업 '퓨리메디' 돌풍
퓨리메디가 자체 개발한 ‘다중 암 진단 소프트웨어’는 혈액 0.2㎖만으로 17종의 암을 94%의 정확도로 진단할 수 있다.

혈액 진단 소프트웨어의 핵심기술은 세 가지다.

첫째 조기(1기~2기) 암 진단 정확도 유지 기술, 둘째 파킨슨병·당뇨 등과 같은 기저 질환 환자에게도 진단 정확도 유지 기술, 셋째 여러 암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암종 분류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는 암 검진 사업은 6대 주요 암에 한정돼 있고, 기존 진단법은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비용 또한 비쌉니다. 영상의학 검사의 경우 혈액 검사, 검진 예약, 금식, 조영제 복용, 수면제투약, 내시경, 영상 판독을 거쳐 최종적으로 조직 생검을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더욱이 모든 장기 조직에 대해 조직 생검이나 영상 검사를 시행할 수도 없으므로 혈액 진단의 고효율성은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 대표는 기존 조직 생검과 영상진단의 한계점에 대하여 이같이 설명하며 혈액 진단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퓨리메디는 이러한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기존 암 검진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양 표지자(tumor marker)가 아닌, 대사체에 주목했다.

암세포와 인체 내 정상 세포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사체를 통해 암세포가 가진 특수한 기전을 파악해 암 유무를 파악하는 원리이다.

암세포를 염증세포라고 할 때 염증은 정상 장기 조직을 공격해 조직을 분해하는 기능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장기마다 서로 다른 특수한 ‘비율’의 패턴이 나타난다.

퓨리메디는 이 같은 ‘염증 마커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염증 종류를 분류해 암 유무를 판별하고, 장기마다 다른 특수한 비율의 패턴을 통해 염증의 위치를 파악해 암 위치를 판별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퓨리메디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창업활동을 주도하며 개발자이자 CEO로서의 역할을 했다.

2017년 안전을 위한 위험검출 센서 및 농약 검출을 위한 마스크 등을 개발한게 대표적이다.

이듬해에는 UNIST 학생창업팀으로서 AI(인공지능) 기반 산업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상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해당 시스템은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제공하는 산재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산업현장의 위험 요소를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대표는 이후에도 혈액 성분을 검출해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휴대용 혈액 성분분석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2018년 실리콘밸리에서의 활동 경험은 이 대표가 퓨리메디를 창업하는 중요 발판이됐다.

실리콘밸리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멘토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대표는 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혔고, 오늘날 다중 암 진단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회사 설립에 앞서 이미 수년 전부터 연구개발을 완료해 임상 테스트까지 거쳤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퓨리메디의 다중 암 진단 소프트웨어의 평균 94%라는 높은 수준의 진단 정확도는 서울의과학연구소 임상시험센터 등을 통해 임상 현장에서의 유효성을 검증받은 수치이다.

퓨리메디가 이처럼 경쟁력 있는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인적 자원이 그만큼 탄탄하기 때문이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주진명 교수가 CTO로 암진단 기술을 총괄하고 있으며, UNIST 생체재료 및 중개의학 연구실 문진희 연구원 등의 인재가 포진해 있다.

퓨리메디는 이 같은 경쟁력을 토대로 지난해 신용보증기금 퍼스트펭권에 선정됐다.

앞으로 다중 암 진단 시장은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악성종양에 대한 선별검사 시장만 2023년 92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약 3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존에도 다중 암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적인 레퍼런스는 이미 존재했지만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진단 정확도가 높지 않고 효율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60~70% 혹은 80% 정도의 진단 정확도로는 의료 현장에 적용할 수 없으며, 대장암의 경우 1시간 내 처리할 수 있는 검체가 20건, 최대 70건 안팎인데, 이처럼 낮은 수준의 효율성이 상용화를 저해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퓨리메디는 94%의 높은 진단 정확도에 1시간 내 약 400건의 검체를 처리할 수 있어 독보적인 경쟁력을 자연스럽게 인정받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퓨리메디는 올 연말까지 2500명의 임상 테스트를 완료하고 내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획득할 계획이다.

더불어 국내 혈액원, 검진센터, 대학병원 등을 통해 10만 명의 진단 레퍼런스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퓨리메디는 국가 암 진단 사업에서 진행하는 대장암, 유방암, 자궁 경부암 등을 넘어 췌장암, 담도암 등까지 폭넓게 진단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나아가 암의 내성과 전이 과정, DNA 손상과 복원 과정까지 깊이 있게 연구해 이 과정과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중장기적으로 환자에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상 목표"라고 강조했다.

UNIST는 한국연구재단의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사업’ 주관기관으로서 창업 유망기술팀 신규 발굴 및 창업기업 사업화 후속지원을 통해 실험실 기반 기술창업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