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가상세계 ‘메타버스’ 이용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 안에서 상표권·저작권 침해, 성추행 등 여러 신종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메타버스에서 브랜드 상표를 무단으로 쓰는가 하면, 미성년자 아바타에게 접근해 몸을 만지며 추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가상세계 범죄는 가해자 상당수가 외국에 있는 데다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족해 관련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 침해 우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30일 ‘치안전망 2022’에서 ‘확장 가상세계상 침해의 현재와 미래’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신종 범죄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타버스는 가상·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생기고 그래픽·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이용자는 세계 2억5000만 명에 달할 정도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25년 메타버스 관련 매출이 2800억달러(약 3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찰은 “메타버스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각종 재산권 침해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표권 및 저작권 침해가 대표적이다. 현실세계에 있는 브랜드 상표를 무단으로 쓰거나 저작권이 있는 건축물 등을 메타버스 안에서 재현하는 식이다.

지난 6월 미국의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여러 음반사로부터 2억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로블록스에서 음원이 무단으로 재생돼 음반사와 가수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됐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작가 메이슨 로스차일드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주제로 대체불가능토큰(NTF)을 만들어 판 것을 두고 에르메스가 “NFT 제작에 동의한 적 없다”고 반발하면서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보고서는 “저작권 침해 행위 외에도 가상재화를 강제로 빼앗거나(강도) 해킹을 통해 훔치고(절도), 사기를 치는 유형의 재산권 침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성년 대상 성착취도

경찰은 재산권 침해 외에도 메타버스에서 성착취 등 성범죄와 혐오표현, 욕설 등의 범죄가 만연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아동과 청소년이 메타버스 범죄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최근 경찰청이 강선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 성인 남성이 지난 4월 제페토에서 “게임 아이템을 주겠다”며 여성 미성년자에게 신체 사진을 전송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한 사례가 발생했다. 보고서는 “이미 메타버스에서 주 이용층을 차지하는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메타버스 내 상대 아바타에 대한 강제추행, 심지어 상대 아바타를 유사강간 또는 강간하는 듯한 행위는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메타버스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처벌이 어렵다. 예컨대 상대 아바타를 만지거나 유사 성행위를 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 형법상 강간죄나 유사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신체 특정 부위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 해서다. 게임에서 살인 및 절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도 절도, 폭행, 사기 등을 처벌하기 까다로운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세계에서 이용하다 보니 범죄가 발생한 뒤 범죄자를 검거하기도 까다롭다”며 “메타버스 관련 기업 등이 윤리적 기준과 행동규제를 마련하는 한편 법적 처벌이 가능하도록 형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