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10일 시행됨에 따라 카카오, 네이버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모바일 메신저와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 오가는 불법 촬영물을 막기 위한 ‘필터링 기능’을 일제히 가동했다.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되자마자 이용자들 사이에선 “과도한 검열이자 통신비밀 침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에서는 보완 대책 검토에 들어갔다.

“유해 게시물 차단 빌미로 검열”

n번방 방지법 시행 첫날…"유해 게시물 잡는다고 마구잡이 검열"
카카오는 이날부터 카카오톡 단체 오픈대화방에 불법 촬영물 필터링 기술을 적용했다. 네이버도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적용한다고 했다.

불법 촬영물 필터링은 작년 5월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 후속 조치다. 정부가 음란물이라고 지정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해 이용자가 전송한 동영상과 움직이는 이미지(움짤)가 이와 같거나 비슷한 불법 촬영물인지 수초 동안 판별한 뒤 전송한다. 이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했다.

국내에서 사업하는 연 매출 10억원 이상 또는 하루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는 필터링 의무가 부여된다.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업체와 구글, 메타(페이스북), 트위터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 등이 해당한다. 디시인사이드, 뽐뿌, 루리웹 등 국내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도 적용 대상이다.

불법 촬영물 유통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적용 첫날부터 “부작용이 크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인터넷 방송 BJ 영상도 필터링 대상이 됐다”며 “불법 촬영물도 아닌데 이는 과도한 규제”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필터링 기준도 모호해 이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에는 “고양이 영상도 검토 대상이 됐다”며 “불법 촬영물도 아닌데 별걸 다 검열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카카오톡에는 이날 ‘테스트방’이라는 이름의 오픈대화방이 수십 개씩 개설되기도 했다. 영상을 올려 어떤 게시물이 불법 촬영물로 필터링되는지 시험해보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필터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인데 필터링 기준과 기술도 정확하지 않아 이용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플랫폼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실효성 떨어져…보완 필요”

이번 조치는 불법 성착취물 유통으로 충격을 줬던 ‘n번방’ 사건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작 n번방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과 디스코드는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두 업체 모두 법인이 해외에 있어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사적 대화가 이뤄지는 채널인 만큼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다. 이 때문에 실효성도 없는 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적 요소가 있고 개인 대화를 사전에 검열·제재하는 것은 영장주의 침해 소지도 있다”며 “범죄자들은 영상을 암호화하거나 포털이 아닌 다른 방식을 이용하면서 법을 회피할 것이기 때문에 법안의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즉각 법 개정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n번방 방지법은 기준의 모호함에 더해 헌법 제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재개정을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이날 “이번 ‘메신저, 커뮤니티 검열제도’를 ‘국민감시법’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통신 사업자들에 이용자를 감시하라고 부추기는 조항이고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나는 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최다은/장강호/구민기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