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수험생들이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수험생들이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제 오류 논란이 일었던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해 법원이 효력정지 조치를 내렸다. 수험생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면서 ‘수능 성적 통지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수능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과목의 응시자 등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수능 정답결정처분 취소 집행정지 사건에서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생명과학Ⅱ 과목을 택한 응시자 6515명의 성적표는 해당 부분만 공란으로 처리해 배부한다. 수능 문제 오류에 대해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은 물론 성적표 일부분이 공란으로 배부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의 입시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와 평가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들과 신속히 협의해 이른 시간 안에 향후 대입 일정 및 필요한 사항을 안내할 것”이라며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생명과학Ⅱ 20번 정답 결정 취소소송이 신속히 진행돼 후속 대입전형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면서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논란에 대해 ‘이상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강태중 평가원 원장은 “많은 전문가와 전문 학회를 자문했고, 그 결과를 종합해 정답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P의 두 집단이 지닌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 집단’을 가려내는 문제다. 이의를 제기한 수험생들은 “지문대로 계산하면 동일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로 인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험생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이 정답을 확정하자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생명과학 전문가들도 평가원의 결정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겸 의과대학 의과학과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평가원이 문제 오류를 미리 발견하지 못한 ‘직무유기’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평가원은 집단 I에서 긴 날개와 짧은 날개 개체 수를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문제를 풀 수 있으므로 오류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며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자신이 푼 내용에 실수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산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음수 개체 수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이런 오류를 발견하고 나면 ‘평가원도 잘못된 문제를 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오류가 있는 문항이 출제됐을 리 없으므로 계산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며 “풀이를 반복하다 시간을 다 쓴 학생들만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능 정답결정처분 취소 본안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10일이다.

김남영/오현아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