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vs "교사가 학원강사냐"
타 시도에서도 주목…전국 교육행정직 경기도 집회에 동참
전문가 "교내 행정업무 갈수록 늘어…중요도 낮은 건 없애야"

경기도교육청이 각급 학교 교사들의 일부 업무를 교내 행정실로 이관하는 '학교업무재구조화 시범학교' 정책을 추진하자 도내는 물론 전국 곳곳의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이 한데 모여 규탄대회를 여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학교 업무 분장 놓고 경기도 교원-교육행정직 갈등 격화
도내 교사 노조 등은 해당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예결위 심사를 앞두고 양측이 예결위 의원들에게 문자 세례를 보내는 등 업무 분장을 둘러싼 두 직종 간 갈등도 격화하는 모습이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교육청본부 경기교육청지부와 전남·충북·경북·경남 등 전국 교육청지부 소속 교육행정직 공무원 400여 명은 지난달 30일 오후 도 교육청 정문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당시 집회에서는 임용 2년 차인 30대 여성 교육행정직 공무원 1명을 비롯한 조합원 5명이 삭발식에 나서기도 했다.

전공노는 "도 교육청은 공무원 노조의 반대와 관련 회의 불참에도 '학교 조직 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통해 교원 업무 20가지를 각 시범학교 행정실에 일방적으로 이관하기로 했다"며 "이는 독선적이고 부당한 업무 떠넘기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재정 교육감은 업무 이관 계획을 철회하고 학교 현장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인 29일에는 경기도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경일노)도 같은 장소에서 각지의 교육청 및 일반직공무원 노조 간부들과 촛불집회를 열고 해당 정책 철회를 주장했다.

안재성 전공노 경기교육청 지부장은 "경기도 관내 시범학교들을 대상으로 정책이 시행되면 추후 이런 방침이 타 시도 학교에까지 적용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전국의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가 행정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한다면 학원 강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발이 불거진 건 도 교육청이 도내 학교의 교원과 교육행정직 간 업무 체계를 재구조화한다는 취지로 지난 3월 '학교 조직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면서부터다.

도 교육청은 지난달까지 교원과 교육행정직 등이 참여한 TF 회의를 15차례 개최해 업무 분담 방안 등을 논의한 뒤 각종 위원회 사무, 사업 계획 수립 및 품의, 강사 채용 등 20가지 사무를 행정실에 이관하기로 했다.

도 교육청은 '학교업무재구조화 시범학교' 정책을 통해 논의 결과를 20개 시범학교에 적용하며 실효성 검토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 교육청은 지난 10월 도의회에 내년도 본예산안을 제출할 당시 해당 정책 사업비로 4억원을 편성해 현재 도의회 예결위 심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교원들의 업무 떠넘기기는 예전부터 계속되고 있다"며 이번 논의 내용 등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TF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도 교육청이 밀어붙이기식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학교 업무 분장 놓고 경기도 교원-교육행정직 갈등 격화
반면, 교원들은 학교 업무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발판이라며 도 교육청의 정책 추진을 반기는 분위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는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조직 혁신 TF는 학생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행정업무를 분류하는 등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며 "'학교업무재구조화 시범학교' 정책이 차질 없이 운영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 9월 도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사·회계·시설 업무에서 교사를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등 관련 대책을 촉구해왔다.

이소희 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은 교사의 일이 학생 교육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밀려오는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소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원과 교육행정직 공무원 간 입장 차이가 벌어지면서 양측 간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전교조, 경기교사 노조 소속 교원들과 전공노 소속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이 각각 '학교업무재구조화 시범학교'에 대해 지지와 반대 입장이 담긴 문자 수백 통을 도의회 예결위 의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 게시판 및 직종별 커뮤니티 등에서도 치열한 찬반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타 시도 교육공무원들 역시 "경기도교육청의 학교업무재구조화 계획안이 확정돼 시행될 경우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직종별로 응원을 하고 있다.

경기교사 노조 관계자는 "예결위 위원들에게 문자를 보낸 것은 예결위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교육에 중심을 둔 판단을 해주길 바라면서 일부 조합원이 응원을 전했던 것"이라면서도 "이런 갈등이 생겨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교육행정직 직원은 "도 교육청은 그동안 각 학교에서 교사 수십 명이 분담해서 하던 일을 행정실에 1명 정도의 직원을 충원한 뒤 전담하도록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도의회에서 현장의 고충을 꼼꼼히 살펴봐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행정직 인력 충원 등 대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업무 이관이 이뤄지는 시범학교의 경우 해당 사무를 맡을 행정직 인력을 충원하는 등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빠르면 이달부터 조직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정책 세부 내용을 전하는 한편 각 노조와 논의 기회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시대가 급변하면서 학교에서는 새로운 행정업무가 생겨나고 있지만, 불필요한 기존 업무들은 대부분 일몰되지 않고 남아있어 교원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의 업무 부담이 커지고 이들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상황"이라며 "관련 기관 등이 정기적으로 업무별 중요도를 평가해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 내줘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