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겨냥 "CPTPP 높은 가입 기준 유지" 한목소리
베트남은 日기업 새 생산거점…"현지 투자 확대"

일본과 베트남이 외교·경제적으로 급속히 밀착하고 있다.

일본과 밀착하는 베트남…'중국 포위망' 동참하나
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진 양국은 오랜 기간 지속된 경제적 협력관계의 확대는 물론 중국의 팽창주의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는 정상 간 공동성명까지 채택하면서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취임 후 도쿄에서 처음 한 정상회담 상대가 베트남 총리였고, 그의 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첫 해외 방문지가 베트남이었던 것은 양국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日·베트남 정상, 中 견제 한목소리…"CPTPP 높은 가입 기준 유지"
올 10월 초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4일 총리관저에서 방일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취임 후 도쿄에서 외국 정상과 한 첫 회담이었다.

양국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중국이 군사 거점화를 진행 중인 남중국해 정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항행의 자유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들은 또 현상 변경 등 일방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관계국에 요구하기로 했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실현하도록 법의 지배에 토대를 둔 질서 유지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일본이 남중국해에서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南沙>·베트남명 쯔엉사) 군도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베트남과 공동 전선을 모색한 것이 이번 회담의 특징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일본에 있어 베트남은 광범위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경제 분야 위주였던 양국의 협력 관계가 외교·안보적 관계로 한층 심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가입을 추진 중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서도 기존 회원국인 양국은 높은 수준의 가입 기준을 유지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본과 밀착하는 베트남…'중국 포위망' 동참하나
CPTPP에 가입하려면 모든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해 일본과 베트남이 반대하면 중국은 사실상 가입이 어렵게 된다.

양국 정상은 또 경제 분야에서는 베트남에 있는 일본계 기업을 포함한 공급망 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 기능실습생의 생활환경이나 사회복지 여건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일본에는 2019년 기준으로 41만명이 넘는 베트남 기능실습생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 기능실습생의 거의 절반이 베트남인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일본은 심화하는 일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저임금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으며, 베트남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일본이 베트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54만 회분을 추가로 제공하기로 하고, 호찌민의 하수도 시스템 정비를 위해 약 108억엔(약 1천115억원)을 상한으로 하는 엔 차관을 제공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기시다 총리는 "베트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일본은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팜 민 찐 총리는 "일본과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화답했다.

◇ 베트남 투자 확대하는 일본…"중국 대체할 생산거점"
일본이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커지는 이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떠오르는 중국 시장에 대거 진출했던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최근 중국 내 기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랴오닝성 다롄(大連) 등지에 모터 생산기지를 운영하던 전자업체 도시바가 중국 진출 30년 만에 현지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일본과 밀착하는 베트남…'중국 포위망' 동참하나
도시바는 연구개발 기능과 정밀공정 공장은 일본으로 옮기고, 나머지 자동차용 전장과 가전 등은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체제 구축과 함께 새로운 국정 목표로 공동부유와 자급자족 등의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반(反) 외자기업 정서가 갈수록 강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일본이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 참여 등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 정책에 적극 가담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사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배경과 함께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의 대체지로 베트남을 위시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본은 대(對)아세안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일본 기업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강할 뿐 아니라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이 풍부해 많은 일본 기업들이 속속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거나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추세다.

디플로맷은 "일본은 최근 수년간 미국과의 동맹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중국이 추구하는 일대일로 전략에 맞서기 위해 동남아국, 특히 베트남과 외교·경제·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절반 이상이 소위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따라 앞으로 현지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일본의 대(對)베트남 투자액은 599억 달러(약 70조 원)에 달했는데, 이를 갈수록 확대한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 유치가 절실한 베트남 입장에서도 아시아 유일의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자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일본과 협력이 확대될 경우 기술 이전과 일자리 창출 등을 기대할 수 있어 '윈-윈'인 셈이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팜 민 찐 총리는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3일 일-베트남우호의원연맹 회장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전 자민당 간사장과 만나 양국 간 인적교류를 확대하고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니카이 전 간사당은 간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집권 자민당 내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후 실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스가 전 총리는 "일본과 베트남 관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며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