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범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어도 이를 감면해주는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를 둘러싼 찬반 공방이 거세다.
최근 ‘인천 흉기난동 사건’ 등에서 부실대응 비판이 쏟아진 만큼 경찰과 정치권은 면책 규정 신설을 몰아붙이고 있다. 폭넓은 공권력 행사가 범죄 예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면책 규정이 공권력 남용과 인권침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소송 휘말릴까 대응 꺼려”
지난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의 핵심은 면책 규정 신설이다. 이 법안에는 ‘긴박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직무를 수행하다가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동안 경찰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금전상 손해를 끼치면 이를 면제받을 길이 없었다. 그런 만큼 범죄 현장에서 대응할 때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으로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경찰이 직무수행 중 소송을 당해 공무원 책임보험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만 107건에 달했다. “이런 현실 탓에 공권력 행사를 망설이게 된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얘기다.
이번 면책 논의도 올해 초 ‘정인이 사건’이 불거진 뒤 본격화됐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하더라도 소송 우려 탓에 아이와 부모를 분리 조치하기 쉽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 게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인천의 한 빌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이 권총과 테이저건을 갖고 있었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하면서 면책 규정 논의에 불이 붙었다.
상당수 전문가는 면책 규정 신설이 이런 한계를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면책 규정으로 경찰관들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 현장에 대응할 것이고,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를 유인도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장 대응 매뉴얼을 지키더라도 형사 고발 등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 범죄를 적극적으로 막을 의지가 작다는 게 경찰 조직의 문제”라며 “공권력 사용이 빈번해지면 인권 침해 논란도 커지겠지만, 이를 의식해 피해자의 신체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하게 초동 조치를 하는 것이 사법경찰관의 역할인데, 한국만큼 공권력 사용을 주저하는 나라가 없다”며 “면책 규정을 통해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면책보다 현장 대응력 길러야”
면책 규정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면책 규정으로 공권력 행사가 빈번해지면 덩달아 인권 침해 소지도 커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지난 27일 부산에서는 한 경찰관이 만취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흔든 사실이 알려져 ‘과잉 대응’이란 비판이 있었다. 참여연대는 29일 논평을 내고 “경찰의 직무집행은 물리적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언제든지 남용될 수 있다”며 개정안 처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 업무는 어디까지나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관이 직무 과정에서 물리력을 적법하게 행사했으면 현행법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는데, 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공권력 집행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법 조항 신설보다 경찰관의 현장 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에서 벌어진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현장에서 부실 대응한 경찰관 2명이 해임 처분을 받았다.인천경찰청은 30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인천 논현경찰서 소속 A순경과 B경위에게 각각 해임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경찰 공무원의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와 감봉·견책 등 경징계로 나뉜다. 해임은 공무원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처분이다. 징계 대상자는 일정 기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인천청은 “감찰조사 결과 범행제지 및 피해자 구호 등 즉각적인 현장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하는 등 부실 대응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들에 대한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두 경찰관은 지난 15일 인천 서창동의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를 막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곧바로 감찰에 나선 인천청은 24일 이들을 직위해제했다.경찰은 한 시민단체가 이들 경찰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인천지방검찰청도 지난 26일 두 경찰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이들의 대응 과정에서 직무유기 혐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얼마나 으리으리한 집이길래 분양가가 8억원입니까?" "5억8000만원 아니고 8억5000만원이라구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분양가로 내놓으세요."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자가 임대료를 내며 10년 장기 거주하고 사전에 확정한 분양가로 분양받는 '누구나집' 사업이 재차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다. 누구나집 관련 보도에는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정한다는 당초 설명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누리꾼들의 지적이 쏟아졌다.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도시공사(iH)는 누구나집 시범사업지 6개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사업지별 사전 확정분양가도 함께 공개됐다. 전용 84㎡ 아파트를 기준으로 의왕초평 A2지구 8억5000만원, 화성능동 A1지구 7억400만원, 인천검단 AA30지구 5억9400만원, 인천검단 AA31지구 6억1300만원이다.분양가가 공개되자 가격이 비싸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실거래가가 확정분양가와 비슷하거나 낮기 때문이다. 의왕초평 인근 전용 84㎡ 아파트는 지난 7월 6억7000만원(송부센트럴시티)과 8월 8억5000만원(휴먼시아5단지)에 거래된 바 있다. 화성능동은 9월 6억9800만원(서동탄역파크자이2차), 10월 7억5000만원(서동탄역파크자이)을 기록했다. 인천검단의 경우도 지난 10월 인천 검단힐스테이트 5차가 5억7000만원에 거래됐고, 11월에는 검단우방아이유쉘이 4억5000만원에 매매됐다.이에 대해 국토부는 "약 13년 이후 분양되는 주택가격을 현 시점에서 정한 가격으로,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고분양가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누구나집 분양가는 현재 기준이 아닌 13년 뒤를 기준으로 한다. 아파트를 짓고 10년 장기 거주를 마친 다음 분양을 받을 때 매겨지는 가격인 셈이다.국토부는 누구나집 확정분양가에 연 1.5% 상승률을 적용했다. 13년간 집값이 연 1.5%씩 오른다는 것인데, 여기서 발생하는 현재 분양가와의 차액은 건설사 이윤으로 돌아간다. 누구나집이 민간사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민간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집값이 연 1.5%씩 13년간 상승하면 약 21%가 오른다. 이를 역산해 상승분을 빼면 현재 기준의 분양가를 도출할 수 있다. 확정분양가를 역산하면 현재 기준의 분양가는 의왕초평 7억800만원, 화성능동 5억8600만원, 인천검단 4억9500만~5억1000만원 수준이다. "누구나집 분양가는 시세가 아니라 '시세의 80%선인 감정평가액의 120%'를 적용한다"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설명에 부합하는 가격으로 볼 수 있다.다만 최근 크게 오른 집값이 누구나집에도 반영됐고, 집값이 추가 상승할 것을 전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기준으로 의왕초평은 4억원대, 화성능동과 인천검단은 3억원대 시세를 보였다. 정부가 집값 고점론을 펼치면서 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자에게 고점에 해당하는 가격을 제시한 격이다. 더불어 10년간 거주하며 임대료를 내는 부분은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 누구나집은 주변 시세의 85% 수준으로 책정될 월 임대료를 내며 살아야 한다. 향후 집값이 매년 1.5%씩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도 그간 정부가 펼친 집값 고점론과 어긋난다.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돈 없는 청년·신혼부부가 10년간 월세를 내면서 8억원을 모을 수 있겠느냐.", "저 돈이면 지금도 서울에 더 근접한 경기도에 살 수 있다.", "집값 떨어진다더니 팔 때는 오를거라고 하느냐.", "10년 월세내고 살다 나가라는 의미냐. 무주택 서민 그만 울려라" 등 비판이 이어졌다.이은형 대한건설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앞으로도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전제를 해야 저렴한 가격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며 "임차인이 분양전환까지 10년간 내는 임대료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