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본사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된 뒤 “본사에서 직고용 해달라”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에서 기각됐다. 법원이 ‘자회사를 택한 것은 본사 직고용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라고 본 것이다.
“도공, 자회사 직원 직고용 의무 없어”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민사15부(부장판사 이춘근)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 334명이 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등에 관한 소송에서 지난달 7일 이같이 판단했다. 소송을 제기한 334명 중 210명은 외주업체에 근무하다가 도로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외주업체 소속일 때 도로공사로부터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받았다며 ‘불법파견’임을 주장했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던 근로자들이 2019년 이미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수원지법은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불법파견이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눈길을 끈 것은 이들이 도로공사와 합의해 자회사로 정규직 전환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한 부분이었다.
법원은 근로자들의 직접고용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자회사 전환에 동의했다면 직접고용 청구권은 소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근로자가 직접 고용되는 것에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불법파견임에도 불구하고 모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회사를 선택한 것은 직접고용을 포기한 것과 다름 없다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앞서 지난 6월에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부장판사 홍기찬)는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FMS 소속 근로자들이 한전을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직고용 해달라고 낸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정부 지침에 따르면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는 것도 정규직 전환”이라며 “한전은 근로자들에 대한 정규직 고용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책임한 정책이 소송 조장
이번 소송의 배경에는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추진하며 비정규직을 대거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유도한 정부 정책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18만5000명 중 4만7000여 명(25.4%)이 자회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자회사의 처우가 외주업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비정규직을 본사에 직접 고용하는 사례가 등장하자 “본사가 직고용하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자회사 직원들이 늘어난 것이다.
2019년의 대법원 판결도 자회사 근로자들이 잇따라 제기한 소송의 근거가 됐다. 당시 도로공사 불법파견 소송 진행 중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의 외주업체 계약 기간이 종료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불법파견으로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했다면 파견근로자가 외주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됐다고 해도 발생한 직접고용 의무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불법파견 관계가 성립했다면 자회사를 선택했어도 여전히 직접 고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회사 선택이 직접 고용을 포기한 것인지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아직 없다. 김용문 법무법인 덴톤스리 변호사는 “자회사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직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상급심에서 근로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최근엔 사기업들도 자회사 형식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상급심 판단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사의 사고사망만인율은 하수급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임시직 근로자의 사망까지도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지난달 11일 주식회사 동일토건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낸 사고사망만인율 통고처분 취소의 소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동일토건은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행복주택 건설공사를 도급 받은 후 이를 A사에 하도급을 줬다. 수급인인 A사는 건설장비를 개인사업자 B로부터 임대했는데, B와 계약을 맺고 건설기계를 운반하던 업체의 임시 일용직 직원이 700kg에 이르는 원통 형태 스크류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작업은 A사 현장책임자의 지휘 감독에 따라 수행되고 있었다. 이에 공단은 이 사망사고를 동일토건의 건설현장 사고사망자 수에 포함하고, 이에 따른 '2020년 사고사망만인율'을 통보했다. 만인율이 높을 경우 △건설업체 시공능력 평가 시 공사 실적액 감액 △국가 발주 사업 입찰참가업체 사전심사 시 감점 부여 등의 불이익이 있다. 동일토건은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B가 중간에 개입돼 하도급 관계가 단절돼 있으며, B와 운반계약을 맺은업체의 임시근로자까지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다"며 "사고에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해 사고사망자 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동일토건은 종합공사 시공 업체로 이 현장에서 발생한 수급업체의 사고사망자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진다"며 "사망 근로자가 수행하던 업무도 동일토건의 공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꼬집었다.이어 "사고사망만인율은 원칙적으로 해당 업체의 공사현장에서 사고사망재해를 입은 근로자수를 모두 포함하며, 수급인(A)이 아닌 자가 공사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수급인과 직접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근로자의 사고를 제외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당장 적용받게 되는 직원들의 동의를 별도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촉진법이나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이숙연)는 지난 19일 강모씨 등 19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은 공단 입사 후 1, 2급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퇴직한 직원이다.공단은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전 직원 정년을 60세로 올리는 대신 2급 이상 직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단 직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했다.이에 대해 2급 이상 근로자들은 반발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임금피크제에 동의해 준 공단노조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지 않는 3급 이하 직원들로만 조직됐다”고 지적했다.이어 “2급 이상 직원들은 연봉제가 적용되는 등 3급 이하 직원들과 임금체계가 다른 별개 집단”이라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2급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임금피크제 탓에 먼저 승진한 근로자가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 10억원을 공단 측에 청구했다.법원은 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3급 이하 근로자들도 앞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다”며 “잠재적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로서 동의해 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승진이 빠른 직원이 높은 가치의 노동을 제공한다거나 먼저 승진한 근로자가 항상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은 건보공단 외에 다른 공공기관에도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전·현직 직원 12명이 공사를 상대로 낸 11억7970만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원고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전·현직 1, 2급 전문위원들로 구성돼 있어 이번 건보공단 소송과 비슷하다. 공단을 대리한 조병기 변호사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아닌 3급 이하 직원들의 동의만으로도 절차적 적법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친구집에 갔던 50대가 승강기에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재판부는 친구인 집주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이영호)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A(59)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28일 밝혔다.A씨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9시 30분께 자신의 집인 주택 2층에 설치한 승강기에 대한 안전 관리 소홀로 친구 B씨가 승강기에 깔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사고 당일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뒤 A씨의 집에서 쉬기로 했다가 술집에 자신의 가방을 두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이후 B씨는 A씨의 집에 혼자 들어가다 2층 승강기가 내려오는 위치를 잘못파악하고 승강기 아래에 있다 사고를 당했다. 조사 결과 해당 승강기는 허가를 받지 않고 10년 전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A씨는 승강기 작동 방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최소한의 안내나 경고 등을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건물 소유자이자 승강기 관리자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그 방지를 위해 충분한 조치를 다 했다고 보기 어려워 유죄가 인정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그러나 A씨는 "피해자의 잘못된 승강기 작동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해 과실이 없다"며 사실오인 및 법리 오해 등의 이유로 항소했다.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와 당심의 현장 검증 결과에 따르면 원심이 든 사정들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면서 "피고인이 안전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옳다"고 판시했다.이진경 키즈맘 기자 ljk-8090@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