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 내몰리는 현실…성기훈은 인간성 지키려는 인물"
"폭력 말고 메시지 봐주길…다음엔 고령화·세대갈등 얘기하고 싶어"
황동혁 "'오징어게임', 낙오되면 회복불능인 사회 향한 질문"
"누구나 엄청나게 경쟁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경쟁에서 낙오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채 사회 밑바닥으로 점점 내몰리게 되죠."
세계적인 히트를 한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18일 열린 SBS 사회공헌 글로벌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에서 작품에 투영한 사회의 모습과 여기에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사전녹화 방식으로 포럼에 참여한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 속 문제의식에 관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오징어 게임' 속 성기훈의 입을 통해 '과연 누가 이런 경쟁 체제를 만들었는지, 누가 우리의 삶을 하루하루 절벽 끝에 서 있게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며 "누가 그런 시스템으로, (우리를) 게임 안의 말처럼 만들고 있는가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 마지막 장면에서 성기훈이 전화에 대고 "나는 말이 아니야. 그래서 궁금해. 당신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라고 던지는 질문을 모두에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황동혁 "'오징어게임', 낙오되면 회복불능인 사회 향한 질문"
'오징어 게임'에는 실업자인 성기훈을 비롯해 탈북자, 이주노동자, 노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황 감독은 이들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빈곤층이라고 꼬집으며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했다.

황 감독은 "빈곤에 몰린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참가한다는 컨셉인 오징어 게임에 경제적으로 바닥에 있는 계급·계층이 등장하는 것은 소재 특성상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한 다양한 인간 군상 가운데 거액의 상금을 두고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성기훈과 조상우에 자신의 모습이 반반씩 녹아있는 것 같다고 황 감독은 말했다.

기훈은 능력은 없지만 인간성을 지키려는 대표적인 인물로, 상우는 능력은 있지만 경쟁 사회에 내몰리면서 점점 인간성이 약해지는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황 감독은 "게임에 참여했다면 기훈보다는 상우에 가까운 사람이 됐을 것 같다"며 "아무리 선의를 끄집어내려고 해도 기훈 정도로 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람"이라며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인 현재 우리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게임에 참여했다면 5번째 게임인 징검다리쯤에서 탈락했을 것 같다고 했다.

황동혁 "'오징어게임', 낙오되면 회복불능인 사회 향한 질문"
'오징어 게임'이 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만 한 건 아니다.

어릴 적 즐겼던 추억의 게임이 폭력적으로 묘사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황 감독은 "작품에 나오는 폭력들은 리얼해 보이지만, 굉장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라며 "지금 이 사회와 그 안의 경쟁으로 막다른 길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지만, 10대들이 어떤 경로로든 작품을 접하고 영향을 받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며 "최대한 보지 않도록 지도해주셨으면 좋겠고, 이미 봤다면 자극적인 폭력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부모님이 지도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이 걱정돼 넷플릭스에 제안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원래 어떤 놀이인지 소개하는 놀이 영상을 제작해 인터넷에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또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상징이 된 초록색 체육복은 어릴 때 실제 학교에서 입던 체육복 색깔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세 가지 도형은 10년 전 작품을 처음 쓸 때부터 구상했던 이미지로, 도형의 단순성을 계급으로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해 가면에 그려 넣게 됐다고 했다.

가장 단순한 동그라미는 일꾼, 세모는 병정, 사각형은 관리자를 의미한다.

황 감독은 "서양에서는 백신이 남아도 맞지 않는데 아프리카는 접종률이 7%밖에 되지 않는 불평등부터 공정성, 기후 문제, 세대 갈등, 성 갈등, 계층 갈등, 고령 사회 문제 등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다"며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면 고령화 문제와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