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 꽉 채운 화물차 > 화물트럭 등 디젤 엔진 차량에 필수로 들어가는 요소수가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단기간 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물류대란을 넘어 제조업 전반의 가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 서울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에 화물차들이 운행을 중단한 채 줄지어 서 있다.  /김범준  기자
< 주차장 꽉 채운 화물차 > 화물트럭 등 디젤 엔진 차량에 필수로 들어가는 요소수가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단기간 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물류대란을 넘어 제조업 전반의 가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 서울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에 화물차들이 운행을 중단한 채 줄지어 서 있다. /김범준 기자
5일 오후 2시 찾은 서울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 대지면적 10만㎡로 서울 최대 화물터미널이다. 평소 같으면 화물차 출입으로 활기가 넘쳤을 시간에 시동 꺼진 화물차만 빼곡히 서 있었다.

여기서 만난 트럭 기사 김모씨(60)는 “일당이 18만원인데, 하루 쓰면 동이 나는 요소수 한 통(10L)을 10만원에 사야 하는 실정”이라며 한숨부터 쉬었다. 요소수 한 통은 화물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면 바닥이 나는 용량이다. 그는 “요소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 화성시 주유소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는데, 품절이었다”며 “전국의 화물차 운행은 차질을 빚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고 말했다.

물류 현장이 ‘요소수 품귀’로 패닉에 빠졌다. 요소수를 구하지 못한 화물차 기사들이 속속 운행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요소수가 있어야 작동이 가능한 항만 컨테이너 이동 장비도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

화물업계에 따르면 전체 화물차의 60%에 달하는 200만여 대가 요소수를 넣어야 운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이런 가운데 주유소에서는 요소수가 자취를 감췄고, 중고 거래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1만원대이던 요소수 한 통 가격이 10만원으로 치솟았다.

8년째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는 박모씨(50)는 “요소수가 경기권은 전부 품절이라 엊그제 서울에서 출발해 충북 음성까지 가 가까스로 구했다”고 했다. 박씨는 “그나마 계약된 화물은 처리를 완료해 위약금을 무는 것은 면했다”며 “다음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항만도 비상이다. 운행을 중단하는 화물차가 하나둘 늘어나는 게 문제다. 이 뿐만 아니라 △터미널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야드트랙터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를 외부로 옮기는 리치스태커 △비어 있는 컨테이너를 옮기는 엠티핸들러에도 요소수가 쓰여 이들이 언제든 멈춰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고속버스 기사들도 요소수 부족에 따른 운행 차질을 우려했다. 고속버스는 화물차처럼 당장 운행을 멈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요소수를 채우지 않으면 시동이 안 걸리는 유로6 기준 경유차다.

한 고속버스업체 직원은 “고속버스회사들도 요소수 문제로 난리”라며 “요소수가 필요 없는 버스 중심으로 운행편을 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인천항 화물차 일부 운행중단…버스도 쓰레기 수거차도 다 멈출 판
택배차 3만~4만대 요소수 사용…생활물류에 막대한 차질 예상

"하루 18만원 버는데 요소수 한통 10만원"
요소수 품귀 사태가 장기화하면 물류현장뿐 아니라 시민의 삶 곳곳에도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활에 필수적인 소방·구급·경찰차를 비롯해 폐기물 수거차, 시외·고속버스 등 상당수 차량이 요소수를 넣어야 하는 경유차이기 때문이다.

대형 화물트럭뿐 아니라 소형 택배차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소형 화물차 13만~14만 대 중 요소수가 필요한 차량 3만~4만 대가 운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생활물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의 발’인 버스도 문제다.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버스 4만5278대 중 경유차는 43.3%(1만8722대)를 차지한다. 서울 등 대도시 시내버스의 75%는 압축천연가스(CNG) 등을 연료로 쓰지만, 시외·고속버스와 농어촌버스는 99% 이상이 경유차다. 연합회는 운행 시 요소수가 반드시 필요한 2015년 이후 출시된 경유 사용 버스 숫자를 집계하고 있다.

경찰은 보유 차량의 38%(약 6500대)가 요소수를 쓴다. 차벽을 세울 때 쓰는 경찰버스와 범인을 옮기는 호송 승합차가 대부분이다. 경찰에는 석 달간 쓸 수 있는 재고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관내 24개 소방서 등에 ‘요소수 재고를 아끼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사용되는 폐기물 수거차량은 총 2100대로, 이 중 1100대(52%)가 요소수가 필요한 배출가스 저감장치(SCR)를 장착했다.

시와 관련 업계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한 달여 뒤 폐기물 수거차량이 멈춰서 길거리에 쓰레기가 쌓이고, 공장들은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가동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기물 수거차량은 자치구 직영과 대행업체 차량으로 나뉜다”며 “구와 대행업체들이 긴밀하게 협조한다고 해도 한 달 이상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폐기물 소각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소각장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요소수를 많이 사용한다. 최근 요소수 품귀현상이 벌어지자 지역별로 재고가 떨어지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폐기물업계 관계자는 “요소수 부족으로 소각장에서 폐기물을 소각하지 못하면 제조업체도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공장이 멈추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폐기물업계에선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폐수를 발효·정제한 ‘음폐수’를 요소수 대신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양길성/최다은/하수정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