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한국서 외로운 싸움…2018년에서야 일본 전범기업 배상 책임 인정 판결 확정
[일제 강제동원 소송] ① 99엔 노동자, 내 나라에서 두 번 울다
[※ 편집자 주 = 2018년 10월 30일 우리 사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 행위와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일본 전범 기업과 일본 정부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고 일선 법원들도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소멸 시효를 계산하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광복 이후 77년째 제대로 된 사죄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전쟁 범죄 피해자들의 실태와 우리 정부가 피해 국민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기사를 2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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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소송] ① 99엔 노동자, 내 나라에서 두 번 울다
태평양 전쟁을 전후해 일제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는 크게 성 착취를 당한 위안부, 노동 착취를 당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남성 강제노역 노동자로 나뉜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욕설과 발길질에 시달렸던 전쟁 범죄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도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는커녕 '99엔' 취급을 당했다.

우리 정부에서도 일본에서도 사죄나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시민단체,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여운택 씨 등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강제노역 피해자 2명은 1997년 일본에서 강제노역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2005년 여씨 등 4명의 피해자가 우리나라 법원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군대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없고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공식 의견을 냈음에도 2008년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판결의 효력이 우리나라에서 인정되고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인 서울고법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일본 판결이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 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 맞다고 파기환송 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농단에 휘말려 5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다가 2018년 10월 "원고 4명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확정됐다.

[일제 강제동원 소송] ① 99엔 노동자, 내 나라에서 두 번 울다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강제 징용됐다가 원폭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도 각각 1992년, 1995년 일본에서 소송을 냈지만 모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미쓰비시 히로시마에서 일했던 박창환 씨 등 피해자 5명은 2000년 국내 법원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우리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 8명도 1999년 일본에서 소송을 시작했으나 2008년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에 원고들의 노동을 증빙하는 후생 연금(노동자연금보험) 가입 사실을 확인하고 연금 탈퇴 수당 지급 신청을 했으나 일본 정부가 물가상승분을 반영하지 않고 인당 99엔만 지급해 사죄 의지가 전혀 없이 피해자들을 욕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99엔' 파문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당시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으나 정부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일제 강제동원 소송] ① 99엔 노동자, 내 나라에서 두 번 울다
양금덕 씨 등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1차)은 2012년 광주지법에 손배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승소한 뒤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피해자 4명(2차)과 2명(3차)도 각각 2014년, 2015년부터 소송을 시작해 1·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있다.

피해자들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외로운 싸움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쟁 범죄 청산을 위한 외교 현안임에도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피해자들이 일본, 한국에서 모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소극적으로 일관했던 우리 정부의 일부 정책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헌재는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놓고 한일 양국 간 분쟁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며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