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사진=신경훈 기자
40대 중반을 넘을 때까지 그에게 남부러울 것은 없었다. 입사 11년 만에 증권사 지점장이란 타이틀부터 막대한 연봉까지. 하루하루 바삐 돌아가는 주식시장에 맞춰 ‘수익 창출’이란 목표만 머릿속에 그리던 ‘워커홀릭’이었다.

그랬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남은 인생 동안 다수를 위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15년 일하던 증권사를 관두고 2006년 발길을 돌린 곳이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계약직 자리였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사랑의열매 설립 23년 만에 내부 출신으로는 처음 사무총장에 오른 김상균 총장(58) 얘기다.

지갑에 늘 시각장애인 점자가 새겨진 명함을 갖고 다닌다는 그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돈 1000원을 기부해도 좋다”며 “기부하는 마음만으로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회 통합의 길은 기부 문화 확산에 있다”며 “사랑의열매의 역할은 기부문화를 확산해 사회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의열매는 국내 최대 모금단체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올해로 설립 23년째인 사랑의열매는 기부와 지원사업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법인입니다. 국민의 필요로 국회 동의를 얻어 제정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에 따라 운영됩니다. 지난해 8461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모금액을 달성해 전국 3만2477개 기관과 45만5790명을 지원했습니다.”

▷다른 기부단체나 모금기관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사랑의열매는 복지사업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모금 활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사회복지 사업을 하려는 단체나 기관을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는 ‘공동모금제도’입니다. 전문적으로 모금 캠페인을 펼치고, 모금된 자원을 지역사회에 배분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사회복지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하고자 합니다.”

▷사랑의열매가 가진 강점은 무엇입니까.

“투명성입니다.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누구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지원할지 배분하는 시스템이 아주 투명합니다. 이런 배분 방식은 세계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정도입니다. 모금액을 집행하고 난 뒤 사후 평가도 합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차후 지원 여부를 결정합니다. 법정 모금기관이다 보니 국정감사, 복지부 감사를 받습니다. 사회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복지 사업을 즉각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코로나19 같은 재난이 발생할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본·보편적 지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민간은 정부가 미처 지원하지 못한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신속하게 지원했습니다. 의료 접근성이 제한된 지역 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는 의료-주거 통합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도 도시락 배달 지원을 했습니다.”

▷코로나 취약계층을 위해 추진한 사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까.

“올해 6~8월 진행했던 ‘사회백신 나눔캠페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47일 동안 647억원을 모금해 생계·돌봄 등 6개 영역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사랑의열매가 처음 연 전국단위 연중 모금캠페인입니다. 그동안 연말 연시에만 모금 캠페인을 해왔는데, 시기에 상관없이 국민들이 어려울 때 모금 캠페인을 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운영상 어려움보다는 저희가 착한가게로 선정한 자영업자, 소상공인 분들이 코로나19로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착한가게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매출 일부를 기부하는 곳인데, 영업을 하지 못하다 보니 성금을 못 내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모금보다도 그동안 도움 주셨던 분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각 지역의 문제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주민, 공공기관, 지자체, 중앙정부가 함께 지역문제를 해결하도록 서로가 일종의 유기체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죠. 지난 15일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민관협력 모금캠페인 협약식’을 했습니다. 지역현안 및 복지 관련 두 개 정부 부처와 합동으로 처음 추진하는 모금캠페인입니다.”

▷개인이 직접 관심있는 사업에 모금을 할 수도 있습니까.

“크라우드 펀딩이 대표 사업입니다. 단순히 아동, 노인 등을 돕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투명마스크 지원, 소아당뇨환자 지원, 발달장애인 도서관 사서 보조 고용지원 사업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원하는 사업에 직접 모금을 해 복지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기부는 여전히 낯선 문화입니다.

“근본적으로 풀뿌리 기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상대를 배려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부문화가 생겨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면 여러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사회 통합의 길을 기부 문화를 통해 마련하는 것이죠. 사랑의열매의 역할은 이런 기부 문화를 잘 만들어 사회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부문화 활성화 방안은 무엇일까요.

“유산 기부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질문에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인 기부 증대’라는 답변이 43.9%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도 오피니언 리더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입각한 적극적인 기부가 필요합니다. 유산 기부를 하는 사회는 기부 문화에 대한 인식도 성숙한 곳이 많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2700여 명입니다. 이런 분들이 20만~30만 명이 되면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는 자연스레 정착될 것으로 봅니다.”

▷연말이 되면 나눔의 상징인 사랑의온도탑이 떠오릅니다.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되돌아보며 성찰을 합니다. 그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사랑의열매는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희망2022나눔캠페인’을 전개합니다. 199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4번째입니다. 국민 모두가 모여 사랑의열매 배지를 차고 기부의 의미를 되새기면 보람차지 않을까요.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과 참여를 부탁합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