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철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 계기 유해발굴 협의 추진"
안중근 의거 112주년 기념식 개최…외증손자도 참석(종합)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2주년 기념식이 26일 거행됐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이하 숭모회) 주관으로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황기철 보훈처장, 김황식 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쓰다가 일제의 강점이 본격화하자 의병운동에 투신했다.

1909년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고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한 안 의사는 같은 해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3발 쏴서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군이 체포하려 하자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쳤다.

하얼빈 의거는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침체한 항일운동을 다시 일으켰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투옥돼 일제의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의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특히 당시 감옥에서 그는 "내가 이토를 죽인 것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오, 또 내가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도 전쟁해 패배해서 포로가 됐기 때문"이라며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오, 의군 참모총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니 만국 공범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안 의사의 외증손자인 이명철 씨가 직접 참석해 '의거의 이유'를 낭독하기도 했다.

안 의사는 이후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한 달여만인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한편,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남북이 참여정부 시절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한 적이 있지만, 이후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발굴을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안 의사님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다양한 소통망으로 외교적 협의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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