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국제 문제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감각을 갖춘 코스모폴리탄.’

국제중재 전문 로펌 피터앤김이 내세우는 인재상이다. 다른 언어와 문화, 법률을 이해하고 능히 활용할 수 있는 ‘세계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기업과 정부 간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국제중재 특성상 이 같은 인재가 로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얘기다.

다음달 설립 2주년을 맞는 피터앤김의 변호사 수는 40명이다. 출범 당시 20명보다 두 배 늘었다. 변호사들의 국적은 총 14개국, 서울 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구사하는 언어만 12개에 달한다. 말 그대로 ‘다국적 로펌’이다. ‘맨파워’로 무장한 피터앤김은 국내는 물론 세계 중재 시장에서 주목받는 로펌으로 성장했다.

‘다양성’이라는 무기

피터앤김은 설립 직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중국 안방보험 간의 7조원대 국제소송을 맡아 미래에셋 측 승소를 이끌어냈다. 이와 함께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5조원 규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도 김갑유 대표변호사가 한국 정부 대리인단을 이끄는 등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급성장했다.

그 결과 피터앤김은 지난 7월 국제중재 전문지인 영국 ‘글로벌 아비트레이션 리뷰(GAR)’가 발표한 국제중재 분야 ‘세계 30대 로펌(GAR30)’ 가운데 26위에 선정됐다. 출범 첫해인 작년에 ‘GAR 100’에 선정된 데 이어 1년 만에 순위가 수직 상승한 것이다.

GAR은 피터앤김에 대해 ‘21위부터 40위 로펌 중 분쟁금액 합계(623억달러·70조원)가 가장 많은 로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앞으로 지속적으로 세계 30대 로펌에 선정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모지에서 싹 틔운 국제중재

국제중재란 서로 다른 법과 제도를 가진 국제 상거래의 분쟁 당사자들이 중립적 중재인을 선임해 판정을 받는 절차다. 법원 판결과 달리 강제성은 없지만 일종의 계약이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다.

국제중재는 신속한 사건 해결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 장점이다. 소송은 3심까지 진행되면 3~4년 이상 장기간 소요되는 데 비해 중재는 평균 1.5년 정도면 결론이 난다. 의뢰인으로선 그만큼 소송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적지 않은 기업이 소송 대신 국제중재를 선택하는 이유다.

한국은 5~6년 전만 해도 국제중재 시장에서 요즘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피터앤김의 김갑유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한국의 국제중재 시장을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20년 넘게 이 분야에 천착하면서 국제중재 분야 권위자로 이름을 알리고 한국의 위상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상사중재협회(ICCA)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국제중재는 로펌의 이름보다 변호사 개인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분야다. “김 대표를 구심점으로 이 분야에 실력을 쌓아온 국내외 변호사들이 합세하면서 신생 로펌 피터앤김이 단기간에 성장가도를 달리게 됐다”는 게 로펌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전 세계로 영토 확장

최근 세계적으로 인수합병(M&A)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금융정보 제공 업체 레피니티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 들어 글로벌 M&A 거래 규모는 8월까지 3조9000억달러(약 4551조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조8000억달러(약 2101조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M&A가 늘어날수록 이를 둘러싼 기업 간 분쟁도 함께 증가하는 게 통상적 흐름이다. 국제중재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피터앤김도 이 같은 시장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위스 출신인 볼프강 피터 변호사가 제네바에 로펌을 설립한 뒤 현재까지 서울-싱가포르-시드니-제네바-베른 사무소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앞으로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 기업 투자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진출할 방침이다.

‘국제중재 분야 세계 최고 로펌’을 지향하는 피터앤김은 이를 위한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전국 로스쿨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국제중재와 관련된 강의와 구두변론 체험 기회를 준다.

보다 많은 한국 변호사들이 국제중재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김 대표는 “펜싱은 프랑스가 종주국이지만 한국 선수들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며 “국제중재 역시 영미권에서 시작됐지만 한국 로펌인 피터앤김이 세계에서 제일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