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된 블랙박스 영상이 '스모킹 건' 역할
경찰 '윗선 개입' 등 외압 의혹 실체는 못 밝혀
이용구 前차관에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 적용 기소

술에 취해 운행 중인 택시 기사의 멱살을 잡고 밀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수사를 받아온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16일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서 내사 종결로 사건을 덮을 때 적용했던 형법상 폭행 혐의 대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가 적용된 결과다.

사건 처리가 이같이 뒤바뀐 데는 이 전 차관이 택시 기사와 합의를 보면서 삭제하도록 했던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복구돼 증거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 전 차관은 변호사로 활동하던 지난해 11월 6일 밤 서울 서초구 아파트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 기사 B씨의 멱살을 잡고 밀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전 차관은 택시 기사와 합의를 보면서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도록 제안했다.

합의한 B씨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경찰은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이렇게 끝난 사건은 1개월여 뒤 이 전 차관이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한 직후 택시 기사 폭행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정차 상태였다고 해도 운행 중인 택시에서 발생한 기사 폭행 사건임에도, 경찰이 운전자 폭행을 특별히 무겁게 처벌하도록 규정상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를 적용하지 않아 '봐주기 조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가법은 택시 기사가 승객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도 '운행 중'에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운전자 폭행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수사를 할 수 있게 규정한다.

사건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 서초경찰서 A경사는 B씨를 조사하면서 폭행 상황을 B씨가 휴대전화로 찍은 37초 분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확인하고도 모른 척했다.

재수사 과정에서 복구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검찰은 이 전 차관이 운행 중인 택시 기사를 폭행한 것이 맞는다고 판단해 특가법상 운전자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이용구 前차관에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 적용 기소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은 경찰이 이 전 차관에 대해 '봐주기 조사'를 했느냐다.

A 경사뿐만 아니라 보고 라인에 있던 서초경찰서 서장과 형사과장, 형사팀장 등 '윗선'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당시 형사과장이던 C경정은 이 전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 후보로도 거론되던 유력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지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하지만 검찰은 A경사의 나머지 상관들은 동영상의 존재를 보고받지 못했고, 부당한 지시를 내린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A경사만 사건 조사 과정에서 폭행 장면을 확인하고도 단순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종결 처리한 혐의(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로 이 전 차관과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A경사는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허위 내용을 담은 내사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결재를 올리고, 결재를 올린 뒤에도 보고서를 수정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도 받는다.

검찰은 당시 지휘 라인에 있던 서초경찰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고, 부장검사회의를 통해 법리 및 사실관계 인정을 신중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건이 당초 제기된 외압 의혹과 달리 경찰관의 개인적인 일탈로 결론이 난 만큼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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