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호적에 등재…가정법률상담소 도움으로 법원서 출생 확인
'이미 돌아가신 모친이 신고해야 한다고?'…구청, 출생신고 처리 한동안 미뤄
'출생신고 누락' 할머니, 우여곡절 끝 오류 정정…"제도정비 필요"
출생신고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할머니가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신고를 하려 했지만 제도적 맹점으로 인해 곤경을 겪다 법률 조력에 힘입어 가까스로 출생신고를 마친 사례가 소개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지원을 받아 69세에서야 가까스로 출생신고를 하게 된 여성 A씨의 사례를 16일 공개했다.

1952년에 태어난 A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작 6살 나이로 남의 집에 가사 도우미로 보내졌다.

가족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지낸 A씨는 1960년대 초가 돼서야 친오빠를 만났고, 실제 태어난 연도보다 4년이 늦은 1956년생으로 주민등록을 신고했다.

이때까지도 자신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실을 A씨는 몰랐다.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A씨는 2017년 신장병 악화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돼서야 자신의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술하더라도 의료비 지원을 일부밖에 받을 수 없고 주거지원에서는 아예 제외되는 실정이었다.

수술 후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고시원을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는 현실을 A씨는 걱정했다.

소송을 내려고 해도 비용이 걱정이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A씨는 올해 2월 가정법률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가정법률상담소는 내부 '백인변호사단'에 소속된 이영임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고, 이 변호사는 A씨의 친모 E씨와 A씨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서울가정법원에 출생 확인 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E씨 호적에 A씨와 이름이 같거나 출생일이 비슷한 다른 사람 두 명이 E씨의 친자식으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이 두 사람을 상대로 E씨와 혈연관계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요청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7월에서야 법원으로부터 A씨의 출생 확인을 받았다.

난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씨가 이로부터 얼마 후 사망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구청에서 A씨의 출생신고를 받아주려 하지 않은 것이다.

E씨는 사망 전 A씨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는 모두 갖춰 놓았지만 구청에서는 법적 출생신고 의무자인 E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기간 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해당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 또는 지자체장이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을 들어 구청을 설득했다.

검찰과 법무부에도 여러 차례 민원을 넣고 연락을 해 A씨 출생신고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구청은 이 변호사가 언급한 법 조항에 관한 법원의 공식적 답변을 들어야 한다며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검찰과 법무부도 '법리 해석에 시간이 걸린다'는 등의 이유로 결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달 10일 가정법원과 법원행정처의 답변을 받은 강남구청이 A씨 출생신고 서류를 접수했고 15일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해 줬다.

가정법률상담소는 "적어도 출생신고와 관련하여서는 모든 서류가 갖추어진 후에도 오로지 출생신고 의무자가 없다는 이유로 50일이 넘도록 지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출생신고에 대한 전반적인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생신고 누락' 할머니, 우여곡절 끝 오류 정정…"제도정비 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