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발생 20일 지났지만 복구 더뎌…"침수 주택에 매트 깔고 잔다"
추석 명절은 남 일…근심 가득한 포항 죽장면 수재민
"상황이 이런데 무슨 추석 명절인교. 말할 필요도 없니더."
15일 오후 경북 포항 북구 죽장면 소재지인 입암리에서 만난 주민 A(85)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장면에서는 지난달 24일 제12호 태풍 '오마이스'와 저기압에 따른 집중호우로 하천과 계곡이 범람해 주택, 상가, 농경지가 침수되고 둑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가 났다.

A씨 역시 집이 침수돼 119 구조대원에게 업혀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해 발생 20일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워 아직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죽장면에 사는 큰아들은 사과밭에 쌓인 흙과 돌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고, 작은아들은 최근 지은 점포가 침수돼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추석이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A씨뿐 아니라 대다수 주민은 여느 추석과 달리 심란한 마음을 애써 달랜다고 입을 모았다.

죽장면은 아직 응급복구가 진행 중이었다.

터진 둑을 대형 흙 주머니로 막고 흙과 돌이 쌓인 하천을 정리해 겨우 물길을 트는 데 그쳤다.

하천을 임시 복구 중인 곳도 많았다.

일부 농경지는 자원봉사자와 중장비 도움 덕에 어느 정도 정비됐지만 상당수 농경지가 흙과 돌이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현내리 주민 김필용(75)씨는 침수된 주택을 수리하지 못해 맨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는데 아침이 되면 습기가 올라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집 바닥에 깨진 부분을 홀로 수리하던 그는 "살아 있으니 할 수 없이 살지, 이게 사는 것이냐"라고 했다.

산에서 밀려 내려온 돌이 하천을 덮은 봉계리는 흙과 돌이 쌓였던 집과 하천이 겉보기에는 정비된 듯 보였다.

그러나 작은 다리 아래에 아직 치우지 못한 돌이 많아 다시 큰 비가 오면 수해 발생 가능성이 높았다.

침수된 주택도 바닥이 완전히 마르지 않아 장판과 도배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70대 주민은 "아직 손도 못 댄 밭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추석을 쇠겠느냐"고 말했다.

합덕리에서도 하천이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한참 멀어 보였다.

이창식(69)씨는 침수되거나 토사에 묻힌 사과나무를 치우고 파손된 쇠 파이프를 새로 설치하느라 바빴다.

그는 "자식들에게는 추석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합덕리와 석계리 곳곳에 침수 피해가 난 사과밭이나 고추밭이 방치돼 있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여서 자포자기한 주민도 적지 않았다.

한 80대 주민은 "사과나무 20여 그루가 떠내려갔고 나머지 20여 그루는 침수돼 제대로 살리기 어려워서 폐원하려고 한다"며 "추석이고 뭐고 마음이 어수선하다" 말했다.

추석 명절은 남 일…근심 가득한 포항 죽장면 수재민
추석 명절은 남 일…근심 가득한 포항 죽장면 수재민
추석 명절은 남 일…근심 가득한 포항 죽장면 수재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