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없이 아내와 4시간 여객선 타고 나와 육지 병원서 숨져
대청도서 백신 2차 접종한 80대 사흘 뒤 사망…유족 '분통'
인천 육지에서 뱃길로 4시간 거리인 서해 북단 대청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80대 노인이 사흘 뒤 숨졌다.

유족은 의료시설이 열악한 작은 섬에서 백신 접종 후유증으로 육지까지 나와 치료를 받다가 시간이 지체되면서 환자가 사망했다며 섬 주민을 위한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12일 보건당국과 유족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전 1시 9분께 인천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중인 A(82)씨가 숨졌다.

올해 7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1차 접종을 한 그는 사망하기 사흘 전인 이달 7일 오전 10시 40분께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에 있는 보건지소에서 같은 백신으로 2차 접종을 했다.

그러나 접종 후 5시간가량 지나자 식은땀이 났고, 복통과 함께 설사와 구토를 하는 등 이상 반응을 보였다.

A씨는 통증을 호소하며 대청보건지소에 다시 찾아갔으나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었다.

당일 날씨가 좋지 않아 여객선이 뜨지 않았으나 때마침 대청도에 업무차 방문한 장정민 옹진군수의 도움으로 배를 얻어타고 전문 의료진이 있는 인근 백령도에 갈 수 있었다.

A씨는 인천시의료원 백령병원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했지만, 근무 중인 레지던트 의사는 제대로 촬영 결과를 판독하지 못해 대형 병원에 의뢰했고, 다음날 새벽에서야 "암은 아니지만, 비장에 하얀 게 보이고 위와 장이 부어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혈압과 맥박이 괜찮으니 육지에 있는 큰 병원에 가려면 배를 타고 나가도 된다"는 의료진의 말에 A씨는 지난 8일 오후 1시께 80대 아내와 단둘이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는 육지에 사는 딸이 여객터미널에 마중을 나오면서 부른 119구급대에 의해 그제야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앞서 촬영한 CT 기록을 본 종합병원 의료진은 "심장 수치가 너무 높아 심근경색이 의심된다"고 했다.

A씨는 지난 9일 0시 30분께 2시간 동안 시술을 받고 응급 중환자실에 입원했지만 같은 날 오후 들어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했다.

그의 딸은 "그날 오후 3시 30분쯤 의료진이 '오늘 고비일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며 "콩팥 등 장기가 다 손상돼 소변이 배출되지 않는 데다 염증 수치도 높다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2차례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3번째 심정지가 온 끝에 결국 숨졌다.

유족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육지와 먼 섬에서 노인들에게 백신 접종을 하면서 후유증에 대비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의 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보건지소가 '언제 백신 맞으니 오세요'라고 하면 노인들은 후유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주사를 맞으러 간다"며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버지가 통증을 호소하며 보건지소에 찾아갔을 때 의사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아버지는 대청도에서 백령도까지 배를 타고 갔다가 다음날 육지로 나와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며 "80세가 넘은 노인이 의료진 없이 연로한 아내와 함께 4시간 넘게 백령도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와서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백령도나 대청도 등 섬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해경 헬기 등을 타고 육지 병원으로 나올 수 있지만, A씨는 이용하지 못했다.

A씨의 딸은 "섬에서 백신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육지에 있는 큰 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하는 대책이 없다"며 "백신 주사만 놔주고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건강했던 아버지가 백신을 맞고 사망한 뒤 보건지소에 연락했더니 사과 한마디 없이 부검 결과부터 물었다"며 "앞으로도 섬에서 노인들이 백신을 계속 접종할 텐데 이상 반응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인천시 옹진군 관계자는 "정확한 A씨의 사인을 알지 못한다"며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